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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임금과 관련한 설화가 많아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E010201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종현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진호

대부도에는 조선시대 이괄(李适)의 난을 피해 도망가다 대부도에 잠시 들렀다고 전해지는 인조(仁祖) 임금과 관련한 설화가 많다.

이런 이야기들이 적힌 문헌은 발견되지 않아 역사적인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좀 더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었다면 서울과 떨어진, 게다가 육지도 아닌 외딴 섬에 왕이 들렀다는 것은 당시 섬마을 사람들에게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사람들은 섬 안의 다양한 장소며 이름들에서 인조의 흔적을 찾고 그것을 후세에 남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인조 임금과 대부도 처녀]

1624년 인조반정 때 큰 공을 세운 무장 이괄은 논공행상 시에 자기 공에 비해 낮은 2등 공신의 행상이 내려지자 이에 불만을 품고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부원수로 있으면서 때를 기다리다 급기야는 반란을 일으켰다.

이괄과 그의 부하장병들이 남하해 한양에 육박하자 인조는 긴급히 배를 타고 피신하게 되었다. 그때 그 배가 잠시 정박한 곳이 대부도였다. 인조대부도에 올라 우물에서 물을 먹으려 할 때에 섬의 어느 처녀가 물을 긷고 있었다. 이때 인조는 무심코 그 처녀를 보고, “네 손이 참으로 곱기도 하구나.” 하며 처녀의 한 손을 쓰다듬어 준 후 이 섬을 떠났다.

그 후 이 처녀는 임금이 어루만져 주신 손이라 하여 천으로 감고 남이 절대로 못 만지게 하였고, 과년하도록 시집도 안 가고 수절하였다. 훗날 난리가 평정된 뒤, 이 얘기를 들은 인조가 이 처녀를 도성으로 불러들여 일생을 편히 살게 해주었다고 전한다.

[왕짓물 이야기]

왕짓물[일명 왕지정, 왕주물]은 종현 마을에 있는 대부도정보화마을센터 부근에 있는 우물이다.

이 우물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 임금이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당시 가뭄이 심해 물이 귀하였는데 갈증을 느낀 왕이, “저곳으로 가면 물이 있을 것이다.”라고 손으로 숲속을 가리켰다. 이에 신하들이 왕이 가리킨 곳을 가보니 과연 우물이 있는지라 갈증을 풀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우물은 왕이 가리킨 우물이라 하여 왕지(王指)물·왕지수(王指水)·왕지정(王指井)·왕주물 등으로 불렸다.

왕짓물과 관련한 다른 이야기도 전해 온다. 종현마을에는 현재 우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옛날에는 우물이 세 군데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아낙네들은 물을 긷고 빨래도 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우물이 바로 왕주물이었다.

조선시대 어느 왕이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물을 마시고 싶어 했다. 수행하던 신하들이 좋은 물을 찾아 헤매자 김씨 할머니가 큰 우물의 물을 권했다. 신하가 그 물을 떠서 진상하자 왕이 “참으로 맛이 있구나.” 하고 칭찬하며, “이렇게 시원한 물을 마셔 보기는 처음이다.”라고 덧붙였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때부터 그 큰 우물을 임금 ‘왕(王)’자에 ‘주인 주(主)’자를 곁들여 ‘왕주물’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왕주물’은 ‘왕지물’이라는 명칭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다가 변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얼마 후 왕주물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말이 마을에 널리 퍼졌다. 무서운 귀신이 나타났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임이 틀림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무당들을 불러 굿을 하게 되었으며 결국 흉터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왕주물 근처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게 되었고, 그 근처에는 상여독을 짓게 되었다. 상여독이란 죽은 사람을 잠시 보관하는 곳으로, 한낮에 지나가도 소름이 끼칠 만큼 으스스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 귀신 출몰 소문이 무성하게 되었다. 혹여 어린아이들이 왕주물에서 놀기라도 하면 마을 어른들이 막았을 뿐더러 가까이 가지도 말라고 타이르기까지 하였다. 지금은 우물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귀신 이야기는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한테서 들을 수 있단다.

어찌됐든 귀신 소동이 있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은 왕짓물과 또 다른 두 개의 우물을 식수로 삼았으나, 왕짓물 위에 관정을 판 이후로는 우물의 양이 줄어들어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마을에 상수도를 설치한 이후에는 우물을 아예 흔적도 없이 모두 메워서 공터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지금은 왕짓물이 있던 자리 한쪽에 건축 폐자재가 쌓여 있어 과거 인조 임금과 관련한 자취는 찾을 길이 없이 옛 이야기만 전해 온다고 마을 어른들이 아쉬워하였다.

[정보제공]

  • •  김복동(남, 1936년생, 대부북동 거주, 종현 마을 노인회장)
  • •  홍성웅(남, 1941년생, 대부북동 거주, 전 대부면 부면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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