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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되어가는 염전을 어떻게 해야 할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E020302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종현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진호

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에 들어서서 구봉도유원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곳곳에 더 이상 소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폐염전들을 만나게 된다. 종현마을에서 가장 큰 염전이었던 구봉염전 역시 일부는 낚시꾼들이 손맛을 보는 유료 낚시터로 바뀌었고, 일부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고랑이 되었다. 그 옆에는 바닷바람 맞은 갈대가 쉼없이 일렁거린다.

한때는 대부도에만 민간 염전이 30군데가 넘었다고 하는데, 그 많던 염전이 이제는 대부분 문을 닫고 폐염전이 되었다. 갑자기 염전들이 쇠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염전의 흥망사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염전들은 당연히 조선총독부에서 관장하였으며, 관에서 소금 생산과 유통을 책임지면서 민간 염전을 일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방과 6·25전쟁 이후 북한에 조성된 염전 1,300여 정보를 제외하면, 남한에는 2,800여 정보만의 염전이 남아 있었다. 소금이 부족하게 되어 국유 염전만으로는 수요를 충당할 수 없게 되자 정부에서는 민간에게도 염전 개발을 허용하였다.

정부는 소금의 자급자족뿐 아니라 수출 목표까지 염두에 둔 소금증산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1956년까지 국유염전 3,500정보, 민간 염전 6,500정보, 합계 1만 정보의 염전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55년에는 국유염전 2,000정보, 민간염전 8,500정보, 합계 1만 500정보가 확보되어 연간 35만t으로 염업사상 처음으로 자급자족을 달성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1950년대부터 대부도에도 염전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약 30여 곳의 민간 염전이 운영되었다. 구봉염전, 대봉염전, 서호염전 등이 모두 이때에 문을 연 염전들이다.

그러나 1957년부터 소금이 과잉 생산되자, 정부는 1961년 12월 31일 「염관리임시조치법」을 제정·공포하였다. 이를 통해 염업 개발의 허가제와 염의 수급비상관리를 규제하는 한편, 전매제를 폐지하고 1962년 1월 1일부터 모든 염전을 완전 민영화했다.

1963년에는 국유염전을 대한염업주식회사로 이관시켰다.

민영화 이후 소금은 흉작과 풍작을 반복하고, 또한 제3공화국의 무분별한 민간염전 허가와 개발이 맞물리면서 염전 수급은 불안정 곡선을 그리게 된다. 수급 불균형이 반복되다가 소금값 폭락이 연일 일어났으며, 게다가 수입 소금이 급격히 들어오면서 끝내 한국의 염업은 사양 산업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종현마을의 구봉염전, 대봉염전, 서호염전은 모두 정부의 염전 정책에 따라 흥망을 거듭하다가 10여 년 전에 문을 닫았다. 서호염전은 현재 매립되어 안산자동차학원이 되었다.

대봉염전 은 대봉유료낚시터와 새우 양식장이 되었다.

종현 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염전이었던 구봉염전 자리에도 유료 낚시터와 새우 양식장이 들어섰다.

염전이 폐업하고 나서 염전에 올릴 바닷물을 저장하던 저수지들은 처음에 새우 양식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새우 양식장으로 3년 정도 번창했었는데, 2003년 서해안 새우 양식장을 휩쓸었던 흰반점바이러스로 인해 양식장 새우가 거의 전멸한 이후에는 새우를 키울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어른들은 “지금은 소금 한 말에 쌀 한 되 정도지만 한때는 소금이 귀한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요즘 대부도 유일의 천연 염전인 동주염전에서 30㎏짜리 소금 한 가마가 20,000원 안팎에 팔리고 있는데, 이는 현재보다 화폐가치가 컸던 10년 전의 가격과 비슷한 형편이라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워 소금을 가마째 사기 힘든 아낙네들은 “소금 받으러 간다.”며 바구니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직접 염전을 찾아갔고, 소금장수가 마을에 오면 주민들이 몰려들어 흥정하는 풍경이 벌어졌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화학적인 방법으로 만든 기계염과 중국에서 들어온 값싼 수입염으로 인해 ‘귀한’ 소금은 ‘흔해빠진’ 소금이 되었고, 결국 채산성이 맞지 않은 염전들은 대부분 문을 닫게 되었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염전으로는 동주염전[대부도동 657번지] 한 곳이 유일하다.

우리나라의 천일염은 중국산 천일염보다 가격은 30% 정도 비싸지만 만성질환의 주범으로 꼽히는 염화나트륨의 순도[80~86%]가 중국산의 순도[85~90%]보다 낮아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에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종현 마을 폐염전들이 다시 그 옛날의 염전으로 화려하게 부활하여 ‘귀한 소금’으로 대접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정보제공]

  • •  김복동(남, 1936년생, 대부북동 거주, 종현 마을 노인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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