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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564
한자 金玄錫
영어음역 Gim Hyeonseok
이칭/별칭 태초(太初),여병재(如甁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20년연표보기
몰년 1456년연표보기
본관 김녕
대표관직 영월군수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태초(太初), 호는 여병재(如甁齋). 아버지는 공조판서 김문기(金文起),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이며, 처는 영금(英今)이다.

[활동사항]

김현석은 생원시를 거쳐 통훈대부에 올라 거창현감겸진주진관병마절도제도위(居昌縣監兼晉州鎭管兵馬節制都尉)에 이르렀다. 이어 양지현감을 거쳐 영월군수에 재임 중 아버지 김문기와 함께 단종 복위에 연루되어 순절하였다. 단종 복위 운동이 정리된 뒤 세조에 의해 논공행상이 이루어질 때, 어머니 선산김씨는 도절제사 유수(柳洙)에게 주어졌고, 처 영금은 이조판서 권람(權擥)에게 주어졌으며, 여동생 김종산(金終山)은 대사헌 최항(崔恒)에게 주어졌다.

김문기가 죽을 때 “세 임금의 명을 받아 총애를 받고 위기에 임하여서는 애석하게 운명하니 그 미진함이 가히 애석하도다.”라고 시를 남기자 김현석은 “살신성인(殺身成人)은 옛 성인이 말한 바 있는데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라고 답시하며 기꺼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묘소]

묘소는 본래 경기도 양주시에 있었으나 현재는 실전되었다.

[상훈과 추모]

사후 영월에 청덕비(淸德碑)가 세워졌고, 1870년(고종 7) 정려가 내려졌다. 1876년 지방관 재직시의 선정을 기려 거창에 송덕비와 사적비가 세워졌다. 1891년 이조판서겸판의금부사에 추증됨과 동시에 장릉(莊陵) 충신단(忠臣檀)에 배향되었다. 현재 아버지 김문기, 아들 효자 김충주(金忠柱), 손자 김경남(金景南), 증손자 김약전(金約前)과 함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에 있는 오정각(五旌閣)[문화재자료 제7호]에 정문이 봉안되어 있으며, 덕양서원(德陽書院) 등에도 배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8.21 가족사항 추가 김현석의 모친과 여동생에 대한 기술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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