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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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景夏墓 |
이칭/별칭 | 원경하의 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 산16-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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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원형 합장분 |
건립시기/일시 | 1761년 |
관련인물 | 원경하|원인손 |
높이 | 1.2m |
지름 | 6.8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 산16-2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에 있는 원경하의 묘.
[개설]
원경하[1698~1761]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화백(華伯)화백(華伯), 호는 창하(蒼霞) 또는 비와(肥窩)이다. 효종의 부마 흥평위(興平尉) 원몽린(元夢麟)의 손자이며, 목사 원명구(元命龜)의 아들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736년(영조 12)에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745년에는 부제학으로 호남진전개량사(湖南陳田改量使)가 되었으며, 탕평책을 창도하여 영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판돈녕 부사로 치사하여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사후 왕이 친히 제문을 지었으며, 해당 관조에 명을 내려 치제하게 하고 관재를 지급하였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창하집(蒼霞集)』10권이 전한다.
[위치]
원경하 묘는 사송동 행정복지센터를 지나 설계골과 인접한 소로변에 남향하여 있다.
[형태]
원경하 묘는 정경부인 신씨(申氏)의 묘와 합장을 이루고 있다. 원형의 봉분은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으며, 크기는 높이 1.2m, 동서 직경 6.8m이다. 묘역에는 봉분 중앙에 혼유석, 상돌, 4각 향로석이 있고, 상돌 좌우에 8각 망주석과 좌측에 묘표를 갖추고 있다. 이 중 상돌은 문고리 문양이 네 면에 양각된 2개의 고석이 받치고 있으며, 보존 상태 매우 양호한데 크기는 높이 45㎝, 너비 151㎝, 두께 92㎝이다. 향로석은 높이 37㎝, 너비 34㎝이다. 망주석은 좌우가 높이 230㎝, 간주석 둘레 103㎝로 크고 수려한 형태이다. 특히 간주석 좌우에는 꼬리를 화려하게 조식한 총 길이 32㎝의 석수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모습을 훌륭하게 양각하였다.
[금석문]
묘표는 봉분 좌측에 남향하여 백색 대리석제의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8작지붕의 지붕돌[옥개석] 형태이다. 그 규모로 보아서는 묘표라기보다 묘갈 혹은 신도비에 준한다. 비신의 비문은 네 면에 있는데 자표(自表)한 것이며, 추기(追記)는 아들 원인손(元仁孫)이 썼다. 앞면은 중국 송나라 소식(蘇軾)의 글자를 집자하여 세로 석 줄로 ‘有明朝鮮蒼霞退隱元公諱景夏之墓 貞敬夫人申氏祔左’(유명조선창하퇴은원공휘경하지묘 정경부인신씨부좌)라 새겼으며, 뒷면은 중국 당나라의 명필 저수량(褚遂良)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겼다.
저수량의 글씨로 집자비를 조성한 예는 극히 드문데,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서명형(徐命珩) 신도비와 더불어 귀한 자료가 된다. 또한, 좌우 측면의 비문은 아들 원계손(元繼孫)이 해서(楷書)로 썼다. 지붕돌은 처마면이 거의 一자이나 끝을 약간 치켜 세웠으며, 처마면은 두께 8㎝이다. 비의 규모는 총 높이 206㎝로, 비좌 높이 60㎝, 너비 92㎝, 두께 55㎝, 비신 높이 113㎝, 너비 52㎝, 두께 26.5㎝, 지붕돌 높이 33㎝, 너비 92㎝, 두께63㎝이다.
[현황]
조선 후기 문신인 원경하 묘는 현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