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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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淑儀金氏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산17-1[궁내로 5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민식 |
성격 |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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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원형 단독분 |
관련인물 | 숙의김씨|이기|중종 |
높이 | 1.5m |
지름 | 5.2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산17-1[궁내로 52] |
소유자 | 전주이씨 덕양군파 종중회 |
[정의]
조선 중종(中宗)의 후궁 숙의김씨(淑儀 金氏)의 묘.
[개설]
숙의김씨는 중종의 후궁으로 왕자를 생산하지는 못했으나 숙정옹주(叔靜翁主)를 출산하였으며, 사위가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 구수영(具壽永)[1456~1524]의 손자인 능창위(綾昌尉) 구한(具澣)이다. 함께 중종을 모시던 숙원 이씨(淑媛 李氏)가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를 낳다가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일찍 죽자, 왕명으로 덕양군을 대신 맡아 잘 양육하였다. 죽은 뒤에 그와 같은 인연으로 덕양군의 후손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봉사(奉祀)되고 있다.
[위치]
숙의김씨 묘는 궁내동 윗말의 북동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변천]
원래 고양(高陽)의 연서(延曙)에 있었던 것을 1965년 지금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형태]
원형의 봉분은 활개를 갖추고 있으며, 크기는 높이 150㎝, 직경 520㎝이다. 묘역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장명등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대개 문인석은 동일한 양식으로 제작되어 묘역의 좌우에 하나씩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데, 숙의김씨의 문인석은 서로 양식이 다르게 조성되어 주목된다. 모두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하고 있지만, 얼굴의 눈, 코, 입 표현에 차이가 있으며 홀(笏)을 잡은 손의 모양새가 완연히 다르다. 즉 오른쪽 문인석은 홀을 잡으면서 왼손을 아래에 두고 오른손을 위로 올린 반면, 왼쪽 문인석은 양손을 포개서 홀을 잡고 있는 것이다. 무슨 연유로 이렇게 만들었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어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없지만, 원형대로라면 이색적인 경우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1965년 이장할 때 문인석 1기가 파괴되어 타지에서 새로 들여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묘역의 중앙에 안치한 장명등의 화사석에는 화창(火窓)을 사방으로 내고, 상석 앞에 놓인 향로석은 육각형으로 다듬었으나 심하게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금석문]
봉분 앞에는 방부원수(方趺圓首) 양식의 묘표(높이 144.5㎝)가 건립되어 있다. 백대리석 비신(높이 123.5㎝, 너비 54㎝, 두께 16㎝)의 전면에 유려한 해서체(楷書體)로 ‘숙의김씨지묘(淑儀金氏之墓)’라 쓰고 뒷면에 건립 연대 1562년(명종 17)만을 기록하였으나, 음기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현황]
현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궁내동 산17-1[궁내로 52]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주이씨 덕양군파 종중회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