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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세충렬문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540
한자 四世忠烈門-
영어의미역 The Story of Four-generation's Memorial Gate
이칭/별칭 열녀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집필자 이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열녀투신담
주요 등장인물 김여물|신립 장군|평산신씨|진주유씨|고령박씨|진주정씨
관련지명 와동|강화도|강화 바다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남편에 대한 4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절의

[정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사세충렬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사세충렬문 이야기」는 병자호란 때 4대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이 피난을 갔으나 오랑캐에게 욕을 당할 수 없다 하여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한 열녀투신담이다. 와동에는 사세충렬문이라는 정문(旌門)[충신·효자·열녀 등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집 앞이나 마을 앞에 세운 붉은 문]을 모신 건물이 있다.

[채록/수집상황]

1989년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김순봉[남, 73]으로부터 이한기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내고장 안산』에 실려 있다. 1996년 와동 주민 김상학[남, 90]으로부터 이정태가 다시 채록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수록하였다.

[내용]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갈 때의 이야기이다. 순천김씨 조상인 김여물(金汝岉)[1548~1592] 집안의 4대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오랑캐에게 욕을 당하느니 죽는 게 옳다고 생각하여 강화도 앞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이보다 앞선 임진왜란 때 순천김씨 김여물신립 장군과 함께 최후까지 왜병과 싸우다가 순직하였고, 그후 김여물을 비롯한 4대의 남자가 모두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였다.

그런데 병자호란 때 이 4대의 여자들, 즉 김여물의 후실 평산신씨, 며느리 진주유씨, 손자며느리 고령박씨, 증손자며느리 진주정씨가 강화도로 피난을 갔으나 결국은 오랑캐한테 욕을 당할 수 없다 하여 강화 바다에 투신자살을 하였다. 이처럼 남자 4대도 전사를 하고 여자 4대도 남자들 뒤를 따라서 투신자살을 하니, 이를 갸륵하게 생각한 조정에서 이를 기리기 위해 정문을 세워주었다.

[모티프 분석]

「사세충렬문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남편에 대한 4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절의’이다. 죽음으로써 정절을 지키는 열녀투신담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설화이다. 「사세충렬문 이야기」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적군에 함락되자 바다에 몸을 던진 사세 고부의 정신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기리고 있다. 여자의 정절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로서, 당시 부녀자들의 정절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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