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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458
한자 金汝岉將軍墓-神道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and Grave of General Gim Yeomul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신대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신도비
건립시기/일시 1593년[묘]|1662년[신도비]연표보기연표보기
관련인물 김여물|신립
높이 76㎝[이수]|26㎝[비신]|70㎝[기대석]
지름 86×38㎝[이수]|159×73㎝[비신]|140×90㎝[기대석]
소재지 주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141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안산시 향토유적 제4호
문화재 지정일 1991년 11월 2일연표보기

[정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는 조선 전기 충신 김여물의 묘와 신도비.

[개설]

김여물[1548~1592]은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충신으로, 자(字)는 사수(士秀), 호(號)는 피구자(披裘子)·외암(畏庵),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 김훈(金壎)의 아들이며 영의정(領議政) 김류(金瑬)의 아버지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의 달천을 등지고 배수의 진을 치고 신립을 따라 탄금대 아래에서 용전분투했으나 왜적을 당하지 못하여 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변천]

김여물의 묘는 1593년(선조 26), 신도비는 1662년(현종 3) 건립되었다. 광해군 초에 충절로 정려(旌閭)되었으나, 인조반정 뒤에 종래의 포상에 의심스러운 데가 많다고 하여 고쳐진 일이 있다. 1639년(인조 17)에 아들 김류의 청에 의하여 다시 정표(旌表)되었다. 뒤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으며, 1788년(정조 12) 장의(壯毅)라는 시호를 받았다. 순조 때에는 신립 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순의(殉義)한 충주 달천의 옛터에 제사를 지내 충절을 기렸다.

[위치]

김여물 장군 묘 및 신도비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141번지 와동초등학교 뒤편에 있다.

[형태]

김여물의 묘는 호석을 두른 원형의 봉분 앞에 구묘표와 신묘표가 나란히 있고, 상석, 향로석, 동자석[1쌍], 망주석[1쌍] , 문인석[2쌍]이 있다. 신도비의 이수(螭首)와 비신은 하나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이수에는 앞뒷면에 용이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희롱하는 장면을 조각하였는데 역동감이 넘친다. 기대석에는 초문이 음각되어 있다. 각각의 크기는 이수 86×38×76㎝, 비신 159×73×26㎝, 기대석 140×90×70㎝이다.

[금석문]

금석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유명조선국증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겸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세자사순창부원군행통정대부의주목사의주진병마절제사김공신도비명병서(有明朝鮮國贈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順昌府院君行通政大夫義州牧使義州鎭兵馬節制使金公神道碑銘幷序)”로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김상헌(金尙憲)이 짓고, 김좌명(金佐明)이 썼으며, 이정영(李正英)이 전액을 하였다.

[현황]

1991년 11월 2일 안산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김여물의 비의 본문과 번역문이 『시흥금석총람(始興金石總覽)』에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김여물 개인의 행적 및 가족 관계 등은 물론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탄금대 전투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비문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