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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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일동에 있는 자연마을. 남산뜰[南山坪]은 좁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뒤쪽 상부와는 달리 남쪽으로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구전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이곳을 도읍지로 삼으려 하자 갑자기 우뢰산(雨雷山)이 울면서 밀려와 지금의 위치[반월저수지 북쪽]에 머물러 도읍지 이전 계획을 멈추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광주군에 속하였다가 1906년 안산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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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한때 묵향(墨鄕)으로 불린 곳이 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이다. 조선시대 안산군 군내면 부곡리(釜谷里)와 신리(新里)에 속해 있던 부곡동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수암면 부곡리로 통합되고, 이어 1986년 1월 1일 법률 제3798호에 따라 안산시 부곡동이 되었다. 부곡동은 2009년 6월 30일 현재 총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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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안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순약(舜若)이다. 민철호(閔哲鎬)의 아들인 민규호(閔奎鎬)에게 입양되었다. 1852년(철종 3) 출생하여 1917년 사망하였는데,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목내동 능안에서 거주하였다. 여흥민씨 세력의 핵심 인물로,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한일병탄에 기여하는 등 친일파로 활동했다. 민영소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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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사람의 시체나 유골을 땅속에 파묻은 곳. 안산 지역에는 선사시대의 무덤으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움무덤이 남아 있으며, 삼국시대의 분묘로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고려시대의 분묘 1기가 조사되었으며, 현재 대부분의 분묘는 조선시대의 것이다. 조선시대의 분묘는 사족의 동향과 집성촌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나 1970년대 후반 도시화와 공업화로 인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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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에 오랜 기간 집단을 이루며 살아온 성씨. 안산 지역은 1970년대 후반부터 공업 단지를 조성하며 기존의 마을이 소멸되었다.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는 가문은 그리 많지 않다. 조선시대 안산 지역에 사패지를 받아 오랫동안 세거한 성씨로는 진주유씨, 파평윤씨, 전주이씨, 해주오씨 등과, 순천김씨, 양주최씨, 남양홍씨, 김해김씨, 단성이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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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강재홍이 경기도 안산 지역 50여 개 세거 성씨를 수록한 책. 『연성성보』는 1857년 진주강씨 강재홍(姜在鴻)이 시흥군 수암면과 군자면에 거주하던 73개 가문의 50여 개 세거 성씨를 수록한 책이다. 당시 강재홍이 필사본으로 12부를 간행하였고, 1878년 재간하여 여러 문중에서 소장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이 소실되어, 언양김씨 김찬(金燦)이 소장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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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운경(雲卿). 아버지는 승문원정자 유명전(柳命全), 어머니는 초계정씨(草溪鄭氏)로 정원첨(鄭元詹)의 딸, 처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점(閔點)의 딸이다. 유재는 1673년(현종 14) 진사시에 합격하고 1679년(숙종 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80년 승문원정자로 재직하였는데, 이때 남인 허견(許堅)의 집에 출입했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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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던 자연마을. 작은별망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 원초지(元草芝)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진(鎭)을 설치하고 이를 사곶영(沙串營) 또는 초지량영(草芝梁營)이라 불렀다. 1656년(효종 7) 강화도로 옮긴 뒤 원초지의 진을 1초지, 강화도의 진을 2초지라 하였다. 원초지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형상이어서 남쪽 지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