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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580
한자 閔泳韶
영어음역 Min Yeongso
이칭/별칭 순약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852년연표보기
몰년 1917년연표보기
본관 여흥
대표관직 중추원의장

[정의]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안산에서 활동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순약(舜若)이다. 민철호(閔哲鎬)의 아들인 민규호(閔奎鎬)에게 입양되었다. 1852년(철종 3) 출생하여 1917년 사망하였는데,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목내동 능안에서 거주하였다. 여흥민씨 세력의 핵심 인물로,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한일병탄에 기여하는 등 친일파로 활동했다.

[활동사항]

민영소는 1881년(고종 1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에 임명되었다. 설서(說書)·장령(掌令)·응교(應敎) 등을 지냈는데, 민씨 척족 세력의 한 사람으로 1882년 임오군란 때 가옥이 파괴되기도 하였다. 1883년(고종 20)에 고속 승진하여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던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에 올랐다. 이어 이조참의,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홍문관부제학, 규장각직제학을 두루 거쳤다.

1889년 형조판서에 오른 뒤 광주부유수, 이조판서,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1891년 병조판서 자리에 올랐다. 이때 민영소고종의 밀지(密旨)를 받아 이일직(李逸稙)으로 하여금 갑신정변 뒤 일본에 망명해 있는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 등의 암살을 교사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894년 민영소는 다시 경기도 안산 출신의 홍종우(洪鍾宇)를 일본에 밀파하고 상하이에서 김옥균을 암살하도록 했다. 이때 민영소김옥균 암살 배후 인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민영소는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퇴진하였다가 1896년 9월 궁내부 특진관이 되었다. 1899년(고종 36) 규장각학사와 대교를 맡았고, 이어 1900년에 양지아문(量地衙門) 총재관에 임명되었다. 이어 학부대신·궁내부대신·농상공부대신·중추원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민영소는 한국이 일본에 강제로 병탄(倂呑)된 이후 1910년 10월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子爵)을 수여받았고, 5만 원의 은사공채를 수령하였다. 또한 민영소는 한국병합기념장과 대례기념장을 받는 등 친일 인사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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