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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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彦眞 |
이칭/별칭 | 현기(鉉琦)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신언진은 한학을 공부한 뒤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 밖 고학당(苦學堂)에서 수학하면서 청년 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하며 항일 투쟁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신언진은 1929년 5월 군산 청년 동맹(群山靑年同盟)의 상무 서기(常務書記)로 활약하였고, 이 때부터 이명수(李明壽)와 교류하면서 사회 주의 사상에 심취해 갔다. 1929년 8월 고향인 옥구 대야면에서 대야 청년회(大野靑年會)를 조직하여 서무부 간부의 일을 맡았고, 이를 바탕으로 11월에는 옥구 청년 동맹 창립 준비 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또한 1930년 3월 전라북도 김제와 전라북도 군산(群山)에서 노동 운동에 대한 실천적 방도를 모색하였으며, 1930년 6월에는 군산 철도 노동회(群山鐵道勞動會)를 중심으로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노동 파업을 지도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30년 7월 28일 일제로부터 체포령이 떨어진 이명수를 은닉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신언진은 1932년 1월 27일 전주 지방 법원에서 소위 범인 은닉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신언진은 노동 운동에 종사하다가 1933년 6월 16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4년 3월 31일 전주 지방 법원에서 소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공소하였으나 1934년 11월 29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