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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642
한자 -移住民-
영어의미역 The Life of Immigrants from Sakhalin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현석

[개설]

사할린 동포들은 일제강점기 후반 일본의 강제징용에 의해 남사할린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사할린 동포들의 공식적인 모국 방문은 1989년 한국과 일본 양 국가 적십자간에 결성한 ‘사할린 거주 한국인 재회지원 공동사업체’가 실시한 일시방문 및 영주귀국사업을 통해 시작되었다.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던 영주귀국은 한·일정부의 영주귀국 시범사업인 고향마을 임대아파트 활용정책에 따라 2000년부터 본격화되었다.

[사할린 동포들의 보금자리-고향마을]

안산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 고향마을은, 1990년대 시작된 정부의 사할린 동포 영주이주사업으로 2000년 2월 이후 귀국한 사할린 동포 1세대[1945년 이전 태생]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경기도 안산시에 조성된 영구 임대 아파트이다.

이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 사할린에 강제 징용된 이후 8·15해방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계속 그곳에 머물다가 7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고향땅을 밟게 되었다. 우리 정부가 땅을 제공하고, 일본 적십자사가 비용을 대는 방식으로 조성된 고향마을은, 인근 고잔신도시 지역의 아파트와 유사한 아파트 단지 형태의 마을이다. 안산시 공무원들이 상주하며 영주 귀국자들의 생활을 돕는 영주귀국동포지원사업소와 각종 설비를 갖춘 복지관, 강당 등 부대시설이 잘 갖추어진 비교적 쾌적한 삶의 공간이다.

[고향마을에 정착한 사할린 동포들의 이모저모]

2000년 영구 임대 아파트로 지어진 경기도 안산시 사동 고향마을 1단지는 여느 임대 아파트와는 다르다. 이곳 입주민들은 모두 사할린에서 영구 귀국한 우리 동포들이다. 평균 연령 74.5세로 일제강점기 전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당한 동포 1~3세들 중 “고향에 뼈를 묻겠다.”며 국적 회복을 신청한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이기도 하다. 2009년 현재 마을 주민 수는 489세대, 849명이다.

‘고향마을’로 명명된 이 아파트는 일본 적십자사에서 건립 비용을 대고, 대한주택공사에서 지었다. 현재 대한주택공사 산하 주택관리공단 소속 직원 6명이 주민들의 생활을 돌보고 있다. 처음부터 거주자들의 특성을 고려해 지어진 만큼 단지 곳곳에는 동포들을 위한 배려가 보인다. 휠체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폭 넒은 복도와 곳곳으로 이어진 손잡이는 물론이고 우리말이 서툰 동포들을 위해 모든 공지사항은 러시아어로 함께 표기되어 있다.

면적도 영구 임대 아파트로는 이례적인 66.12㎡여서, 대부분의 입주자들은 “사할린에서는 생각도 못할 좋은 시설”이라며 만족해한다. 한 달 동안 고향마을에서 세상을 떠나는 거주민은 평균 2명으로, 모두 정부가 지원한 비용으로 유족을 부르고 장례를 치른 뒤,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망향의 동산’에 모신다. 이렇게 조국에서 영원히 잠든 고향마을 주민은 지금까지 120명에 이른다.

‘고향땅에 뼈를 묻고 싶어서’ 온 이들이지만 사할린에 두고 온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은 클 수밖에 없다. 1975년 남편과 사별한 뒤 사할린에서 식당 종업원을 하다 고향마을에서 정착하여 살고 있는 신계자[67세, 경상남도 창원 출신] 할머니는 “내가 떠난 뒤 아들딸들이 한국에 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남매를 사할린에 두고 온 박우천[80세] 할아버지와 김옥희[74세] 할머니는 “1주일에 한 번씩 자녀·손주들과 안부를 주고받지만, 순번대로 가게 되는 사할린 방문과 자녀들의 서울 방문을 학수고대한다.”고 말했다.

2007년 인천 논현지구에 입주한 동포들을 제외하면, 현재 안산시에 있는 고향마을 외에는 고령층 사할린 동포들을 위한 특별한 거주 시설이 없다. 따라서 사할린 동포들은 동료들이 ‘먼저 떠난 뒤’ 빈자리가 생기기를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주택관리공단에 따르면 사할린에서 귀국을 고대하는 고령의 동포들은 현재 아파트 주민 수의 네 배 가까운 3,000여 명이라고 한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일본이 지원한 돈으로 경기도 안산시 사동에 500세대 아파트 건설이 완공된 2000년에, 유감스럽게도 오직 500세대 노부부들만 입주한 것이 첫째이고 마지막 귀환이었다. 현재 영주 귀국을 희망하고 있는 사할린 한인들은 몇 천여 명이 된다. 1930년생들인 그들은 안산시의 고향마을 아파트에 언제 빈자리가 생길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양로원이나 요양원 시설들에는 빈자리가 있으나 그곳으로 영주 귀국할 사람들은 나서지 않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여러 가지 물질적 어려움이나 주택 문제 등으로 다른 출로를 찾지 못한 노부부들이 안산 고향마을로 영주 귀국했다. 가족을 버려두고 다시 이산가족을 만든 셈이 되었다. 노년에 와서 이런 결정을 내리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국에 있는 친지·친척들과 생이별한 후 반세기 이상 지나서 다시 고국으로 떠나오면서, 대부분의 동포들은 고국 땅에 묻히고 싶어서 귀국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 아파트 입주자들, 특히 남편이나 아내가 사망하고 홀로 남게 된 사람들 중에는 사할린에 살고 있는 자녀에게로 돌아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정말 이와 같은 상황을 노년의 어르신들이 기대했을까 싶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마련된 ‘종전 50주년 기념 프로젝트’에는, 사할린에 잔류한 한인들의 일시 모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은 해마다 일방적 방식으로 일시 모국 방문 차수[1990년도 13차부터 2005년과 2006년 4차수까지]를 줄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일본 대중 매체들에는, 안산시에 사할린 한인 2세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사할린에서 귀환시킬 한인 1세들은 더는 없다고 하는 의견과 기사들이 여러 번 실렸다. 이런 방식으로 일본은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할린 한인들에 대한 지원의 의미를 축소하면서 사할린 한인 문제와 인연을 끊으려고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까지도 영주 귀국하여 위중한 상태로 누워 있는 부모의 병문안이나 부모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주 귀국한 동포들의 자식들이 한국 입국 비자를 받는 것도 특별히 예민한 문제였다. 그래서 심한 경우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일도 생기는 등 문제가 커지자, 최근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와 영사의 협조 하에 비자 없이 한국으로의 입국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사할린에는 일제강점기 강제 이주당한 어른들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난관을 겪고 있다. 이들이 하루 속히 영주 귀국하여 걱정 없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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