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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골과 노비 아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531
한자 梅實-奴婢-
영어의미역 Masilgol Village and The Son of Servants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집필자 이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명유래담|복수담|명당파괴담
주요 등장인물 설총|처녀|노비|노비 아내|설씨|노비 아들
관련지명 매실리|매실골|마실리|마시리
모티프 유형 매실리의 유래|설씨의 과욕|노비 아들의 복수

[정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매실골과 노비 아들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9년 5월 18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김순봉[남, 73]이 구연한 것을 최내옥·김용덕·강경희·이정임·송현정이 채록하여 1989년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출간한 『한국학논집』에 수록하였다. 이후 1988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과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재수록하였다.

[내용]

현재 안산시청이 있는 자리의 속지명은 매실골이다. ‘매화 매(梅)’자에 ‘열매 실(實)’자를 써서 흔히 매실리·마실리·마시리 등으로 부르는데, 한자로 쓰면 매실리(梅實里)가 정확하다. 매실리에 대한 유래는 이러하다. 지금으로부터 한 천 년 전쯤의 이야기이다. 신라 말기에서 고려 전기쯤으로 짐작되는 그때 설총(薛聰)[655~?]이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설총의 묘가 매실리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설총의 자손들이 다 망하여 설총의 묘도 없어지고 비석조차 자취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설총의 집안에 처녀가 있었는데, 설총의 누이라고도 하고 설총의 고모라고도 한다. 아무튼 이 처녀가 아기를 낳았다. 꿈속에서 하늘에서 선녀가 매화꽃 한 송이를 처녀에게 주었는데,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아기를 낳았다는 것이다. 아기는 딸이었다. 처녀의 딸은 아주 총명하여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 세상에 모르는 게 없었다. 집안에서는 선녀로부터 매화꽃을 받고 태어난 아이라 해서 아기 이름을 매실이라 하였고, 마을 이름도 매실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매실이 태어나면서부터 설씨 집안에 벼슬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설총이 대신을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으로 말하자면 장관도 나오고 차관도 나오고 도지사도 나오는 등 집안이 일사천리로 번창하였다. 그렇게 집안이 번성하던 중 매실도 세상을 떠나고, 그 뒤 몇 대쯤 지난 후였다.

설씨 집안의 노비 내외에게 다섯 살 먹은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노비가 무언가 잘못을 하여 설씨 상전이 매를 쳐서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노비를 산에 갔다 묻어 버렸는데, 노비의 아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은 다섯 살밖에 안 되어 깊게 생각할 수는 없었겠지만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죽었구나!’ 하는 분노는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직후 죽은 노비의 아내와 아이는 설씨 집안에서 쫓겨났다.

갈 곳이 없는 노비 여인과 아이는 문전걸식을 해 가며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강원도 어느 산골로 들어가 화전민으로 정착하였다. 노비 여인은 혼자 감자 등속을 일궈 어린아이를 키우며 살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노비 아들이 한 여남은 살이 되었는데, 어느 날 이 아들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우리 아버지는 무슨 이유로 돌아가신 겁니까?”

노비 여인은 아이가 웬만큼 성장하였으니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하였다. “네 아버지는 설씨네의 노비였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노비 여인은 이러저러한 잘못으로 아버지가 상전한테 맞아 죽었다고 그 내막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얼마 후 노비 아들은 노비 여인에게 말하였다. “집을 나가겠습니다.” 노비 여인은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노비 아들은 “집을 아주 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노비 여인이 “그래, 네가 집을 나가 뭘 한다는 거냐?” 하고 묻자 노비 아들은 “예, 공부를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노비 아들은 아버지의 원수를 기필코 갚으리라 결심하고, 슬피 우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집을 나왔다.

강원도 산속이라고 해도 옛날에는 절도 많고 서당도 많아 마음만 먹으면 공부가 가능하였다. 노비 아들은 한 절로 찾아가 백발이 성성한 노승을 보고는 필시 도승일 거라 생각하고 그 절에 머물렀다. 노비 아들은 절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틈틈이 공부를 하였다. 노비 아들은 노승으로부터 지관(地官)·지술(地術)에 관한 가르침을 받았다. 곧 풍수지리를 배운 것이다.

그렇게 공부하기를 10년, 노승은 노비 아들에게 말하였다. “이제는 너에게 가르칠 게 없구나. 하산하여 네 길을 가거라.” 노비 아들이 하직 인사를 하고 절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데, 이제는 주위의 산세란 산세는 눈을 감고도 알게 되었다. 노비 아들은 10년 만에 어머니를 상봉하고 인사를 한 다음에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고향으로 가 아버님 산소나 한번 둘러보겠습니다.” 아버지 산소를 찾아 인사하겠다는데 안 보낼 수도 없어 노비 아내는 승낙하였다.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아들은 중의 복색에 바랑을 짊어지고 머리에는 고깔을 쓰고 길을 떠났다. 이런 모양새를 하니 그가 누군지 쉽게 알아보기 어려웠다. 노비 아들은 강원도에서부터 몇 날 며칠을 빌어먹어 가면서 현재 안산시청이 있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으로 와 곧장 설씨의 집을 찾아갔다.

노비 아들은 설씨의 집 대문 앞에서 목탁을 치며 시주를 요구하였다. 그러자 하인이 나와 곡식을 한 됫박 갖다 줬는데, 노비 아들은 이를 받다가 짐짓 실수한 척하여 바닥에다 쏟고는 이걸 느릿느릿 줍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시각이 그럭저럭 지나 해가 저물자 설씨네 가장을 불러 요구하였다. “날이 저물었으니 하룻밤 묵어가게 해 주시오.”

집주인 설씨는 점잖은 스님의 청이라 쉽게 승낙하였다. 노비 아들은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하고 사랑으로 드는데, 집 주인 설씨가 따라 들어와 이야기나 나누자고 하였다. 노비 아들은 대화를 통해 설씨의 사람됨을 알게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욕심이 과하면 못 쓰는 법이다. 당시 설씨는 지금으로 따지자면 도지사쯤 되었던 사람인데, 욕심이 과한 터라 쉽게 말해 장관도 하고 싶고 총리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집주인 설씨는 노비 아들이 풍수에 밝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송구스럽지만 우선 선대 산소가 여기 바로 뒤에 모셔 있으니 내일 아침에 묏자리가 어떤지 한번 둘러봐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노비 아들은 승낙하였다. 노비 아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노비 아들이 식사를 한 후 산으로 올라 산소를 이리저리 돌아보니 과연 대단한 명당자리였다.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묏자리가 있는 산세는 매화낙지혈(梅花落枳穴)이 분명하고, 산 모양이 쥐처럼 생겼는데 산소는 바로 쥐의 목이 있는 자리에 있었다. 산세가 이러하니 묏자리는 대단한 명당이었다.

당시에는 현재의 안산시청 앞에 조그만 섬이 하나 있었다. 현재는 육지와 붙어 있지만 옛날에는 떨어져 있었다. 떨어져 있는 그 가운데로 바닷물이 들락날락하여 배를 타고 육지와 섬을 오갔었다. 그 섬은 하나의 산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산 모양이 꼭 괭이[고양이] 같이 생겼었다. 쥐 잡아먹는 고양이처럼 생긴 고양이 혈이었다. 그런데 이 고양이란 놈이 건너다만 봤지 바닷물에 막혀 쥐를 잡아먹을 재간이 없어 그저 쳐다만 보고 앉아 있는 형상이었다.

‘저것만 연결시켜 놓으면 이 집안은 당대에 망할 것이다.’ 노비 아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마침 욕심이 과한 설씨가 묏자리를 봐 달라고 하니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노비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돌아보니 참 명당은 명당인데,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게 있습니다.” 설씨가 놀라 “유감스럽다니, 그게 뭐요?”라고 물었다. 노비 아들이 “저 산과 이 산을 한데 맞붙여 놓으면 영의정이 될 것인데 아깝군요. 이 집안에 뭐 그렇게 할 힘이 있겠소?”라고 말하자 설씨는 “있다 뿐입니까!”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곧바로 설씨는 도지사 지위를 이용하여 인원을 총동원해 바다를 콱 막아 버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괭이[고양이]란 놈이 건너와 쥐를 덥석 잡아먹어 버렸다. 결국 혈이 다 없어져 쥐가 죽은 것인데, 그 즉시로 설씨네 문중 벼슬아치들은 그냥 전부 삭탈관직당하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모조리 망해 버린 것이었다.

고양이산과 쥐산을 한데 합쳐 놓았기 때문에 고양이가 건너와 쥐를 잡아먹어 설씨네가 망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선녀가 매화꽃을 가지고 내려왔다고 해서 현재의 안산시청 자리를 매실골이라 불렀다는 했다는 전설이 여기에 내려오고 있다. 바로 이 안산시청 자리가 아마도 설총 산소가 있던 그 위치가 아닌가 한다.

[모티프 분석]

「매실골과 노비 아들」의 주요 모티프는 ‘매실리의 유래’, ‘설씨의 과욕’과 ‘노비 아들의 복수’이다. 선녀가 매화꽃을 가지고 내려왔다고 하여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안산시청 자리를 매실골로 불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또한 욕심이 과한 설씨의 선조 묏자리를 파괴함으로써 노비 아들이 복수를 하였다는 명당파괴담이자 복수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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