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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733
한자 韓仁及
영어음역 Han Ingeup
이칭/별칭 원지(元之),현석(玄石),서석(瑞石)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응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583년연표보기
몰년 1644년연표보기
본관 청주
대표관직 형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원지(元之), 호는 현석(玄石)·서석(瑞石). 할아버지는 부사직 한경남(韓敬男), 아버지는 우의정 한응인(韓應寅)이다. 사위로 선조의 열째 아들 흥안군(興安君) 이제(李瑅)가 있었으나 이괄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활동사항]

한인급은 경기도 안산 월곡면 사사리(沙士里)[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서 태어났다. 1601년(선조 3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지내며 춘추관기사관으로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사간원정언, 홍문관수찬을 지냈다.

1613년 아버지가 선조가 유언(遺言)으로 영창대군을 잘 보호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른바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으로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되자 사직하고 한동안 은거 생활을 하였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병조좌랑에 제수되었고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삼도독향어사(三道督餉御使)로 군량을 조달하였다. 1631년 경연참찬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1633년에는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형조판서를 지냈다. 이듬해 개성유수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1643년 청나라 태종이 죽자 지돈녕부사가 되어 진위겸진향사의 부사(副使)로 심양(瀋陽)에 다녀왔다. 한인급은 서예에 뛰어났으며 아버지 묘비의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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