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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603
한자 吳俊泳
영어음역 O jun-yung
이칭/별칭 영중(英仲),파운(坡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창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29년연표보기
몰년 1894년연표보기
본관 해주
대표관직 이조판서|사헌부대사헌

[정의]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영중(英仲), 호는 파운(坡雲)이다. 증조부는 오윤상(吳允常), 할아버지는 오치성(吳致成), 아버지는 오우선(吳友善)이며, 오홍선(吳弘善)에게 입양되었다. 1829년(순조 29) 출생하여 1894년(고종 31) 사망하였다. 묘는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있고, 1919년에 세운 묘갈명이 있다.

[활동사항]

오준영은 1855년(철종 6) 진사시에 합격하고, 1860년 문음으로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다. 1861년 식년시에 병과로 급제한 후 1863년 부응교를 거쳐 이듬해 사간이 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871년(고종 8) 이조참의, 1874년 좌부승지, 1881년 이조참판, 1882년 동지의금부사, 1883년 대사헌, 1885년 도승지, 1886년 형조판서, 1888년 우참찬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888년 경기도관찰사와 이듬해 황해도관찰사를 지냈다.

황해도관찰사로 재임할 때 장산곶과 장연부의 오차진(吾叉鎭)이 지리적 요충지로서 병력 증원과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건의하였고, 연안부남대지(延安府南大池) 건설의 총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890년 이후부터 방곡령을 실시하였는데, 당시 일본인 2명이 김천(金川) 조포(助浦) 지방에서 대두(大豆)를 매점하여 인천으로 운송하려는 것을 금지시켜, 이른바 황해도 방곡사건을 일으켰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1891년에는 한성부판윤·예조판서 등을 거쳐, 1892년에는 이조판서와 사헌부대사헌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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