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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순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593
한자 沈舜澤
영어음역 Sim Suntaek
이칭/별칭 치화(穉華),문충공(文忠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성별
생년 1824년연표보기
본관 청송
대표관직 영의정

[정의]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치화(穉華). 아버지는 진사 심의린(沈宜隣),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남준행(南駿行)의 딸, 처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이진재(李晋在)의 딸이다.

[활동사항]

심순택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으며 상록구 월피동 다리피에서 살았다.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조참의, 예방승지(禮房承旨)를 거쳤다. 1874년(고종 11) 충청도관찰사로 나아갔다가 1878년 예조판서를 시작으로 형조판서와 이조판서를 고루 역임하였다. 1881년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 설치되자 당상경리사(堂上經理事)가 되었고, 신무기 제조와 군사 훈련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1882년 도봉소당상(都捧所堂上)으로 있던 중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파직되었다. 1884년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했으며 갑신정변 실패 후에 수구당 내각이 조직될 때 영의정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건양 1) 아관파천(俄館播遷) 직후 조직된 보수 내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이듬해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수립되자 의정(議政)이 되었고, 1897년 황제에게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사용할 것을 건의해서 채택되었다. 그러나 공홍식(孔洪植) 옥중살해사건이 계기가 되어 독립협회의 탄핵을 받고 체직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봉남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01년 공훈1등 태극장(太極章)을, 1902년에는 이화대훈장(李花大勳章)을 수여받았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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