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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275
한자 占-
영어음역 Jeomseom
영어의미역 Jeomseom Village
이칭/별칭 점성(占星)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유래]

성호 이익(李瀷)[1681~1763]이 이곳에서 별을 관측하였다 하여 첨성(瞻星)이라 하였다가 이익이 세상을 떠난 뒤 미신의 의미가 내포된 점성(占星)으로 바뀌었다. 이익이 살던 동쪽 지역은 탑이 있던 곳이라 하여 탑골[塔洞], 남쪽 지역은 아랫말, 서쪽 지역은 건넌말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성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이계손(李繼孫)[1423~1484]의 묘를 현재 이익 선생 묘수인산업도로 사이에 쓴 후 이계손의 셋째 아들로 제천현감을 지낸 이지시(李之時)의 후손인 여주이씨들이 묘 아래쪽에 살면서부터 마을이 이루어졌다. 이후 김해김씨, 밀양박씨 등이 세거하여 세 성(姓)을 ‘점섬의 삼대 성씨’라 불렀다. 이계손의 8세손인 이익은 이곳 초야에 묻혀 일생을 학문에 몰두하였다.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郡) 군내면(郡內面) 첨성리(瞻星里)였다가 조선 후기부터 점성리(占星里)로 개칭하였다. 원래는 성포동에 속하였으나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일동에 속하게 되었다. 1981년 폐동 때 67호의 민가가 이주한 뒤 택지로 조성되어 1986년부터 민가가 들어섰다. 폐동 전 마을 동남쪽에 있는 도당산(都堂山)[또는 사청]에서 매년 음력 7월 1일에 산신제를 지냈다.

[현황]

문화 유적으로 돈용교위를 지낸 이우량(李友諒), 예조참판을 지낸 이상신(李尙信)[1564~1610]의 묘가 있고, 이곳에 있었던 사재감첨정을 지낸 이우인(李友仁)[1535~1594], 개성유수를 지낸 이우직(李友直)[1529~1590], 이상홍(李尙弘)[1559~?] 등의 묘는 화장하거나 공주 등지로 이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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