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강흔이 경기도 안산의 안원사를 찾아가서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다시 안원사에서 놀며」는 삼당재(三當齋) 강흔(姜俒)[1739~1775]이 안원사를 다시 찾아가 보고 느낀 감회를 적은 한시이다. 빈(頻)·인(人)·친(親)·진(陳)을 차운한 오언율시로 그의 문집인 『삼당재고(三當齋稿)』 춘(春)권에 실려 있다. 강흔은 강세황의 둘째 아들로서 25세 때인 1763년(영조 3...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한때 묵향(墨鄕)으로 불린 곳이 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이다. 조선시대 안산군 군내면 부곡리(釜谷里)와 신리(新里)에 속해 있던 부곡동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수암면 부곡리로 통합되고, 이어 1986년 1월 1일 법률 제3798호에 따라 안산시 부곡동이 되었다. 부곡동은 2009년 6월 30일 현재 총 8,40...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조선시대에 안산군 군내면 부곡리와 신리였다가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수암면 부곡리가 되었다. 1986년 1월 11일 법률 제 3798호에 따라 안산시 부곡동이 되었다. 2002년 11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상록구에 속하게 되었다. 안산시 동북부에 있는 마을로 201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
조선 후기 강세황이 경기도 안산에 있는 안원사에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강세황은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났지만 최성대(崔成大)는 그를 평하기를 글씨보다 시가 훨씬 낫다고 하였으며, 이광려(李匡呂)[1720~1783]는 그를 ‘시인의 정수’라고 극찬하고, 그의 시상(詩想)과 시어(詩語)는 매우 담백하고 고상하며, 속된 말을 절대 쓰지 않았다고 하였다. 「안원사에서 자고 대설을 보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부곡동의 벌터와 신촌 사이에 있던 마을로, 조선 숙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유명현(柳命賢)[1643~1703]이 현 안산시 정수장 밑에 살았으므로 유명현의 아호를 따서 정재골[靜齋谷]이라 하였다. 유명현의 아들로 안동판관을 지낸 유래(柳徠)[1687~?]가 이곳에 사당을 지은 후[일제강점기 중엽에 폐사] 후손인 진주유씨들이 세거하면서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