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1175 |
---|---|
한자 | 舞登里立石 |
영어공식명칭 | Mudeungri Ibseok(menhir) |
이칭/별칭 | 제내리 무등리 입석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상훈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924년 - 무등리입석 건립 |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3년 6월 23일 - 무등리입석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무등리입석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무등리입석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무등마을 |
원소재지 | 무등리입석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무등마을 |
성격 | 입석 |
크기(높이,둘레) | 200㎝[높이]|160㎝[너비]|30㎝[두께] |
소유자 | 무등마을 |
관리자 | 무등마을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무등마을에 있는 선돌.
[개설]
선돌 문화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큰돌[선돌, 고인돌, 칠성바위, 조탑]문화의 일종으로 많은 의미를 지닌다. 선돌은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나 경계에 세워져 그 기능을 담당하는데 1기나 2기가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마을 수호, 생산과 풍요[기자, 성신앙], 액막이, 화재막이, 풍수비보적 역할을 한다.
[위치]
무등리입석은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의 무등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마을 사람들은 무등리입석을 ‘독선돌’이라 부른다.
[형태]
무등리입석은 장방형[직사각형]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무등리입석의 크기는 높이 200㎝, 너비 160㎝, 두께 30㎝ 정도 된다.
[의례]
무등리입석은 산이 남쪽으로 굽어 있어 재물이 모이지 않기 때문에 재물이 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세워졌다. 또한 마을에 액운이 발생할 때 무등리입석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무등리입석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어느 때 무등리입석을 함부로 해서 벼락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무등리입석 한쪽 면을 깎아서 ‘불암(佛岩)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南無阿彌陀佛觀世音菩薩)’이라고 글씨를 새겨 놓아 민속신앙과 불교의 성격이 함께 드러난다. 무등리입석 아래쪽에 ‘천년노암(千年老岩) 흥불유암(興佛有岩) 만세타불(萬世陀佛) 유암흥불(有岩興佛)’, 왼편에 ‘시주(施主) 심상기(沈相基) 하원갑자(下元甲子) 3월(月) 일(日)’이라고 새겨져 있다. 무등리입석에 기록한 시기는 1924년으로 파악된다.
[현황]
무등마을은 동래정씨에 의해 형성되었다. ‘무등’이란 지명은 마을 뒷산이 옥녀등천형(玉女登天形)이라는 데에서 유래한다. 무등리입석은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무등리입석은 민속신앙과 불교의 성격이 함께 결합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