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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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致福 |
영어공식명칭 | Yu Chi-bok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66년(고종 3) - 유치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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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10년 - 유치복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0년 - 유치복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유치복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유치복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자 |
[정의]
개항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활동 사항]
유치복(柳致福)[1866~1910]은 1907년 한 마을 사람 11명과 같이 항일구국투쟁을 맹서하고 삼남의진 의병대장 유지명 의진에 들어갔다. 유지명 의진에서 동지 3명과 함께 10월 10일 우북면 장암 이화순의 집에서 군자금 30원을 조달했다. 이어서 송태식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미력면 도내리의 최순표의 집에서 군자금으로 엽전 15전을 조달했다. 한편 전라도·충청도 일대에서 의병장 유지명·동지 송태식 등과 함께 여러 차례 적과 교전해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8년 12월에는 윤병오라는 자가 의병이라 사칭하면서 겁탈, 강간 등 풍기를 문란하게 하므로 유지명 의병장이 타일렀으나 듣지 않으므로 유치복에게 명령을 내려 총살하게 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망하자 동지들과 후일을 기약하고 해산한 후 혼자 임피로 피신했으나 곧 금마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혀를 깨물어 피를 품으며 꾸짖자 일본 헌병이 그 자리에서 총살, 순국했다.
[상훈과 추모]
유치복은 1980년 대통령 표창,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되었다.
1982년 고산 유림들이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고흥유씨 일문 구의사 사적비(高興柳氏一門九義士事蹟碑)’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