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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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湖南邑誌高山縣 |
영어공식명칭 | 『Honamupji』「Gosanhy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1871년과 1895년에 편찬된 『호남읍지』에 수록된 고산현[완주군 고산면] 읍지.
[개설]
『호남읍지』는 1871년 제1차 총11책[규장각본, 한국교회사연구소본], 1895년 제2차 총18책[규장각본] 등 2차례에 걸쳐서 편찬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호남읍지』는 19세기 고종 초기의 정국 운영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자료이다. 고종 연간에는 탕평군주(蕩平君主)를 모범으로 삼아서 다양한 문물제도가 재정비됨으로써, 세도정치기에 단절되었던 통치제도의 연결고리를 회복하고자 했다. 이 자료는 바로 18세기의 전통을 재결집해 국가의 지방통치에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편찬되었다.
[형태/서지]
『호남읍지』[1871년, 奎 12175]는 10책이며, 지도[부분 채색]는 세로 30.4㎝, 가로 19.9㎝이다. 『호남읍지』[1895년, 奎 12181]는 18책으로, 세로 28.7㎝, 가로 17.9㎝이다.
[구성/내용]
『호남읍지』 「고산현」 의 1, 2차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고산현지도(高山縣地圖)와 고산현 읍지(邑誌)로 구성된다. 읍지는 강계(疆界), 방리(坊里), 호구(戶口), 도로(道路), 건치연혁(建治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관직(官職), 산천(山川), 누정(樓亭), 성씨(姓氏), 풍속(風俗), 단묘(壇廟), 관사(舘舍), 제언(堤堰),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사찰(寺刹), 고적(古跡), 인물(人物), 효열(孝烈), 열녀(烈女)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차 호남읍지[고산]는 제1차와 목차는 같고 그 순서만 다르나, 고산현 읍사례(高山縣邑事例)가 추가되었다.
[의의와 평가]
『호남읍지』[奎 12175]는 1871년(고종 8)에 총10책으로 편찬되었다. 조선 전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영조 연간]의 『여지도서(輿地圖書)』 이후 처음으로 도(道)에서 제작한 읍지에 해당한다. 18세기 정조 때 시도된 『여지도서』의 보완 작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이후의 읍지들과 지역 전통을 기록한 사찬(私撰) 읍지의 성과 등을 모아 편집되었다. 고산현은 제4책에 수록되어 있으며, 고산현지도에 이어 읍지가 있다. 당시 읍치는 지금처럼 고산면 읍내리에 있었고, 고산현의 영역은 현재의 완주군 고산면, 동상면, 경천면, 운주면, 화산면, 비봉면 일대에 해당한다. 고산현지도는 읍치의 좌향을 고려해 북쪽을 위쪽에 배치해서 그렸으며, 읍치가 풍수적 명당 형국을 취한 것처럼 표현되었다. 『호남읍지』[奎 12181]는 1895년(고종 32)에 총18책으로 전라도 56개 군현이 편찬되었다. 고산현은 제11책에 김제, 임피, 만경, 여산 등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1871년의 『호남읍지』[奎 12175]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용을 많이 요약하고, 읍의 사례들은 고산을 포함해서 35개 군현이 수록되었다. 같은 시기에 편찬된 경상도 『영남읍지』에 대구를 제외한 모든 읍의 사례가 수록된 경우와 비교된다. 그만큼 읍지를 만드는 과정이 급하게 이루어졌음을 반영하는데, 1884년(고종 21)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으로 전라도 일대의 행정이 1895년 초까지 거의 마비되었던 때문으로 보인다. 단기간에 대규모의 정보를 파악한 때문에 편집의 완성도는 1871년 『호남읍지』에 비해 뒤떨어지나, 전라도 모든 군현의 읍지가 수록된 도지로서 보면 이 지역에 관한 연구 자료로서의 의의를 갖는다. 또한 읍사례 부분은 동학농민운동 이후의 고산현을 포함한 당시 전라도 지방의 재정구조를 밝혀주는 자료로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