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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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春滿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노춘만은 1919년 옥구에서 독립 사상 고취를 위해 활동하다가 투옥되었다. 출옥 이후 1921년 상해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임시 정부 운동 자금을 조달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노춘만은 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박영진·이중열·정대원 등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익산군[현 전라북도 익산시] 의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만세 시위를 익산군 전체 지역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1919년 4월에는 옥구군[현 전라북도 군산시] 내에서 이유상·강성원 등과 함께 지경면·회현면·대야면 등 여러 곳에서 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 사상을 고취하면서 활동하다가 1919년 4월 17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투옥되었다. 1921년 음력 3월 하순에는 임시 정부 요원 신정산의 권유로 임시 정부에 가맹자금 100원을 출자하였으며 김유중을 권유하여 가입시킨 후 자금 40원을 받아 신정산에게 전달하였다. 또한 1921년 11월에서 12월 사이에는 전령준 외에 23명을 임시 정부에 가입시키고 운동 자금 2,410원을 조달하였다.
노춘만은 1923년 1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3년 3월 26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