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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184
한자 金洪烈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 11월 16일연표보기 - 김홍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 김홍렬 투옥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김홍렬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24년 11월 28일연표보기 - 김홍렬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0년 - 김홍렬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 - 김홍렬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김홍렬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김홍렬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김홍렬 활동지 - 서울특별시
활동지 김홍렬 활동지 - 평안도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삼성 구락부 조직원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김홍렬은 1919년 서울 천도교 본부에서 민족 대표로부터 독립 선언서 삼 천 여매를 받아 평안도 일대의 배부 책임자가 되어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이 지방의 독립 만세 운동에 기여하였다. 1919년 3월 5일 서울 시내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고향인 옥구[현 전라북도 군산시]로 내려와 1919년 3월 29일 독립 만세 시위를 하려다 체포되었다. 이후 1924년 옥구에서 비밀 결사 조직을 만들어 항일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김홍렬은 1919년 3·1 운동 때 중앙 연락 요원으로 활약하였고, 그후 옥구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김홍렬은 1919년 2월 28일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종일(李鍾一)로부터 3천 여 매의 독립 선언서를 전해받고, 평안도 일대에 배포하였다. 그 후 고향인 옥구로 내려와 진장권(陳壯權)·채만식(蔡萬植)·김석종(金錫宗)·최한풍(崔漢豊)·황봉규(黃鳳奎) 등과 함께 옥구군 일대의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다가 체포되었다.이때 체포된 김홍렬은 1919년 6월 20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4년에는 청년들을 규합하여 비밀 결사 조직인 삼성 구락부(三省具樂部)를 조직하여 항일 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1924년 11월 28일 옥중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에 대통령 표창, 1991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3권(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1)
  • 국가 보훈처 공훈 전자 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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