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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어촌계와 어촌 계장의 하루 일과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D030103
한자 豊島漁村契와 漁村契長의 하루 일과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영의

마을 사람 모두가 어촌 계원인 풍도어촌계의 임원은 계장 1명, 간사[감시원 겸함] 1명, 임원 3명으로 구성되었다. 계장은 정기 총회에서 직선제로 선출하며, 간사는 계장이 직접 임명하여 임기 동안 같이 활동을 한다. 개발 위원은 계원들이 지명을 하여 뽑으며, 임원 중 1명이 수협 대의원을 맡는다. 임기는 모두 3년으로 하고 있다.

어촌계의 계원자격은 이사나 다른 일로 마을을 떠나게 될 때 상실되며, 타지에서 마을로 이사를 와서 주민등록을 하면 어촌계에 가입할 수 있다. 예전부터 신규 가입시에는 입어료를 냈는데, 2009년 현재 입어료는 백만 원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정식 어촌 계원이 되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자격으로 어업 활동을 할 수 있다.

풍도 사람들은 모두 어업으로 생업을 꾸리고 있다. 주로 포패업(조개류 채취 등의 맨손 어업)과 어선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연중 조업일수는 150일 정도이다. 풍도 사람들은 풍도 주변의 수심이 깊어 갯벌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도의 소유권이 화성시에 넘어가기 전까지는 화성시 서신면의 3개 마을과 442㏊ 규모의 어장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풍도 사람들은 도리도에서 풍도어촌계 단독으로 58ha 규모의 굴·바지락 어장을 운영했는데, 연중 굴과 바지락을 많이 잡고 가무락·동죽·맛·낙지도 소량으로 잡았다. 특히 굴 채취 기간 중에는 작업 시설과 거주지를 임시로 도리도로 옮겨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2000년부터는 풍도 앞바다에 가리비, 전복 등의 시험 양식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도리도를 화성시에 넘겨 주기 전까지 이루어진 바지락과 굴 등 포패류의 채취 작업시 사전에 계장은 물량과 작업 참가자의 성별, 나이 및 집집마다의 인원을 통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작업 일정이 정해지면 집집마다 나이와 상관없이 가능한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많은 물량을 채취했는데, 이러한 이유는 1970년대 후반부터 시화지구 개발사업으로 서해 어장이 황폐화되고 생산량이 급격히 줄면서 수협상인이 요구하는 물량을 맞추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채취한 물량은 도리도의 선착장에서 간사가 무게를 달아 수협 상인에게 넘겼다. 그러나 이것도 2004년을 끝으로 남의 일이 돼버렸다.

어촌계원 중 어선업을 하는 주민들은 10명에 불과하다. 현재 어선 10척과 보트 20척이 풍도의 해상을 누비고 있다. 이들은 각각 5톤 미만의 배를 1척씩 소유하고서 포패류의 채취가 없을 때는 풍도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한다. 연중 그물과 통발을 이용해 우럭, 놀래미와 같은 잡어류와 꽃게·낙지·박하지 등을 잡고, 낭장망 그물로는 실치와 멸치를 잡는다. 어획물은 탄도의 수협공판장으로 싣고 가 선상경매로 처분한다. 이외의 시간에는 낚시꾼을 위한 낚시배를 운영하는 것으로 소득을 꾸려 간다고 한다. 풍도어촌계의 주요 시설로는 수협 및 국가지원금으로 지은 선착장, 물량장, 면세유를 저장하는 유류 탱크와 자체의 경비로 지은 창고가 있다.

2009년 현재 풍도어촌계장은 차영석[47세] 씨가 맡고 있다. 차 계장은 풍도에서 나고 자랐다. 제2영신호를 몰면서 마을 어촌계를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좋은 종패를 구하기 위해 전국의 여러 종패장을 순회하며 구해 오기도 하며, 마을의 어촌계 시설 관리에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차 계장은 개인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어장 관리와 꽃게잡이로 1년을 대부분 바다에서 지낸다고 한다. 또 9월부터 12월까지는 마을 노인들을 모시고 풍도 인근 무인도에 들어가 굴채취 작업도 도와야 한다고 했다. 어선을 운전하며 1년 내내 집보다는 밖에서 생활하는 그였지만, 그의 소망은 풍도의 자연환경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보제공]

  • •  차영석(남, 1962년생, 풍도동 거주, 풍도어촌계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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