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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된 방글라데시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C030201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민

그의 이름은 나빅이다. 원래 그의 조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이다. 2008년, 한국 나이로 그는 마흔세 살이다. 1991년 관광을 겸해 한국에 왔다가 눌러 앉은 뒤로, 비자 갱신 문제로 중간에 방글라데시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곤 18년간 계속되는 한국 생활이다. 경기도 광주가 친정인 아내와 결혼한 그는 이제 곳 한국인이 될 것이다.

그의 한국 생활은 인천 부평에 있는 플라스틱 그릇을 만드는 공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플라스틱 공장이 1995년경 시화공단으로 옮기자, 함께 따라와서 공단 내에 위치한 기숙사에서 먹고 잤다. 2002년,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대우가 훨씬 좋은 반월공단 내 어느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퇴직한 회사의 기숙사에서 나와 원곡동의 국경없는 마을에서 친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공장과 가깝고, 방세도 저렴한데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마을에는 방글라데시인들이 제법 살고 있었다. 먹는 것은 하루 세 끼 공장에서 한국 음식으로 해결하고, 원곡동에서는 거의 잠만 자는 생활이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가 한국어를 익히는 것이었다. 한국 생활을 해나가면서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어렵고, 하물며 방글라데시어는 더더욱 쓸모가 없었다. 처음에는 기독교 계열 단체인 코시안의 집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후에는 혼자서 TV를 보거나 외국인을 위한 언어교재를 보면서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웠다. 초기에는 문법도 어렵고 발음도 까다로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어 쓰는 것을 일상화하고 꾸준히 공부를 했더니 이제는 그 누구를 만나도 대화하는 데 장애가 없다. 2007년에는 TV 뉴스에서 한국어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한국어도 어렵지만 한국문화를 익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장 기숙사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이제 막 한국 생활을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한국 음식뿐이었다. 식사 때가 되면 배고픔보다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앞섰다. 찰진 쌀밥도 그렇지만 김치나 된장, 고추장, 찌개 맛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밥 때가 되면 한국 음식이 먼저 떠오른다. 커피도 원두가 아닌 한국인이 즐겨 마시는 냉동커피가 입에 맞다.

그래도 지금은 고향 음식이 그리우면 언제든지 마을 곳곳에 있는 파키스탄이나 인도 음식점에 가서 사먹으면 된다.

친구를 만나면 네팔이나 스리랑카 음식점에 가기도 한다. 지금도 쉽게 적응되지 않는 것이 한국의 ‘빨리빨리’문화이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즉시 처리해야 되니, 여유는 없고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는 삶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적응해서인지, 그의 일상에서도 ‘빨리빨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이다. 다른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가장 우선이 취업 문제이고, 취업 뒤에는 임금 책정이나 임금 체불, 산업 재해를 포함한 작업 환경, 폭력을 비롯한 인권 문제 등이 중요한 문제들이다. 비자 갱신이나 의료, 고향의 가족 일들도 중요하지만 모두 나중의 문제가 되었다.

18년이 넘는 한국 생활 중 원곡동에 산 지는 7년이 되었다. 동네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살기에 편해서인지 다른 곳으로 이사할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공장이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혹은 결혼 등의 이유로 거처를 불가피하게 옮기는 일은 드물다. 마을 환경이나 외국인 주민센터를 비롯하여 외국인 제공되는 행정 서비스의 범위도 확대되었고 서비스의 질도 과거에 비하면 향상되고 있는데 이사 갈 생각이 날 리 없다.

다만, 꼭 있었으면 하는 시설이 우체국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국에 편지를 하거나 소포를 부치려 해도 우체국이 멀고 게다가 노동자들이 쉬는 날에는 우체국이 열지를 않는다. 출입국관리 업무를 처리하는 분소도 생겼으면 한다. 사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인데, 안산의 경우 인천까지 가야 하기에 경제적·시간적 부담이 많다.

한국 생활이 20년 가까이 되어서인지 이제는 방글라데시로 되돌아가면 잘 생활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최근 한국인 귀화신청을 했다. 귀화 요건을 모두 갖추었기에 신청은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는 이제 방글라데시아인이 아닌 한국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에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아닌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 계속 살 게 될 것이다.

[정보제공]

  • •  나빅(남, 1966년생, 원곡동 거주,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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