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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꾼들이 허탕 친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B020302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삼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우

1970년대 삼천리 마을은 현재의 군포시 대야미동과 같은 반월면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그 동안 대야미동은 개발이 진행되어 지가가 많이 높아졌으나 삼천리는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이니,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해도 마을 사람들의 상실감은 의외로 큰 듯하다. 원래 반월도시계획은 반월면이 행정구역상 화성군에 속해 있을 때 작성된 것이다. 그래서 삼천리마을은 물론이고 당시 반월면에 속해 있던 마을에는 아직도 화성군 시절의 문패를 달고 있는 집들이 있다.

1970년대 후반은 고도성장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경제 발전과 함께 국토 개발이 촉진되어 전국 곳곳에 수많은 공사들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복부인’으로 상징되는 부동산 투기꾼들이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였다. 채소밭과 과수원만 있던 강남 지역이 ‘강남 대개발’로 인해 새로운 시가지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미리 개발 정보를 입수하고 개발 예정지에 토지와 집을 사 두었던 부동산 투기꾼들이 떼돈을 벌었다.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번 이른바 ‘졸부’들이 많아지면서 너도 나도 일확천금을 꿈꾸며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렸고, 이로 인해 서울을 필두로 전국의 땅값이 가파르게 올랐다.

그런 이유로 1976년 반월공단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대거 반월 지역으로 들어왔다. 민병무 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반월 지역은 물론이고 그 주변으로 부동산소개사무소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고 한다. 삼천리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한 칸짜리 창고 건물만 있어도 부동산업자들에게 세를 주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공단 건설 예정지는 군자면 신길리와 목내리, 원시리, 성곡리, 초지리였고 주택지가 들어설 곳은 수암면 고잔리, 성포리, 원곡리 일대였다. 이름만 반월공단이었지 화성군 반월면은 제외되었다. 결국 정확한 개발 정보를 모르던 얼치기 투기꾼들은 반월 지역에 공단이 들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땅을 샀다가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마구잡이로 들어서던 부동산 소개 사무소들은 ‘새떼들이 앉았다가 일어난 것처럼’ 몇 달 만에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정보제공]

  • •  민병무(남, 1934년생, 팔곡동 거주, 전 반월면 면장)
  • •  장동호(남, 1946년생, 건건동 거주, 전 안산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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