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B010203
한자 韓禮賢 墓의 童子石 이야기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삼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우

윗삼천리  조희복 씨 집 앞에는 말라 죽은 향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향나무 아래쪽에 이제는 사람들이 쓰지 않아 덮어 버렸지만 과거에는 우물이 있었단다. 이 향나무를 돌아 좁은 농로로 들어가면 나오는 터널을 지나면 감절대가 나온다. 그리하여 이 감절대를 지나 들어가면 안산시의 숨겨진 마을이라는 삼천리에서도 더욱 숨겨진 마을이 나오는데, 바로 구석말이다. 구석말에는 얼마 전까지도 청주한씨(淸州韓氏)들이 많이 살았으나, 반월동역 부근의 창말로 거의 대부분 이주하여 현재는 인공 낚시터와 음식점 몇 군데만 남아 있는 형편이다.

청주한씨들이 많이 살았던 곳인 만큼 이곳에는 청주한씨 묘역이 있다.

반월동에 살고 있는 한씨들이 정성껏 돌보고 있어 보존 상태가 매우 훌륭한 이곳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이 한예현 선생의 묘이다. 이 묘에는 다른 묘에 있는 것보다 크기가 작은 동자석이 2개 서 있다. 이 동자석은 다른 동자석의 형태와는 달리 문인석 형상을 하고 있어 특이한데, 그보다는 동자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더 재미나다.

옛날 마을에 장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살았는데, 힘이 장사였다. 이 할머니가 가을에 도토리를 따러 테미산에 갈 때면 꼭 이 한예현 선생 묘에 들러서 동자석을 뽑아 허리춤에 매달고 올라갔다. 그러고는 테미산에 올라 도토리를 딸 때면, 이 동자석으로 도토리나무를 후려갈겨서 우수수 땅으로 떨어지는 도토리를 주워 담았다고. 그렇게 해서 자루가 다 차면 다시 동자석을 허리춤에 달고 돌아와서 묘 앞에 세워 두었다고 한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할머니와 관련한 설화는 전국 각처에서 전해 온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세상 만물을 만들었다는 우리 신화 속의 마고할미와도 연관이 있는 이야기란 것을 알 수 있다. 단군 이후 역사에서는 사라졌지만 무가를 통하여 전해 내려오는 마고할미는 우리 민족이 태고부터 받들었다는 여신이다. 덩치가 아주 큰 여신으로 오줌을 누면 강을 이루어 넘쳐흘렀고, 한숨을 쉬면 그 입김이 태풍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한 번은 마고할미가 남쪽바다를 건너다가 물이 다른 곳보다 깊어서 치맛자락을 적셨다. 이에 젖은 치마를 말리려고 월출산에 널었더니 온 산을 휘감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러한 마고할미의 전설은 어머니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선사시대의 산물일 것이다.

이 마고할미 전설이 단군조선 이후 남성 중심 사회로 바뀌면서 권위가 낮아지게 되었고, 그 뒤로는 남성들에게 차별받았던 여성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각 지역의 할미 전설로 남게 되었으리라. 그렇게 하여 산을 들고 강을 만들던 태초의 여신은 안산의 조그만 마을 삼천리에서 묘의 동자석을 들고 도토리를 따는 할머니로 우리의 전설 속에 남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