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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국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1098
한자 景德國師
영어의미역 Buddhist Master Gyeongdeok
이칭/별칭 난원(爛圓)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여성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999년연표보기
몰년 1066년연표보기
본관 안산
대표관직 도승통

[정의]

고려 전기 안산 출신의 승려.

[가계]

본관은 안산(安山). 속성은 김씨(金氏), 법명은 난원(爛圓). 할아버지는 안산김씨(安山金氏)의 시조 상서좌복야 김긍필(金肯弼)이고, 아버지는 고려 현종의 국구(國舅)인 상주국안산군개국후(上柱國安山郡開國侯) 김은부(金殷傅), 어머니는 안효국대부인(安孝國大夫人) 이씨(李氏)이다. 형은 병부상서 김충찬(金忠贊)이며, 3명의 누이가 각각 원성왕후(元成王后), 원혜왕후(元惠王后), 원평왕후(元平王后)가 되어 덕종·정종·문종을 낳았다.

[활동사항]

경덕국사안산현[현 경기도 안산시 장상동]에서 태어났다. 10세를 전후해서 출가한 것으로 보이며, 홍주(弘疇)에게서 불교를 배웠다. 이후 여러 차례 승계를 높여 갔으며, 1058년(문종 12) 60세 때 개경의 영통사(靈通寺)에 있었으며,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행차하여 왕사가 되었고, 화엄종 도승통(都僧統)을 역임하였다. 이때 ‘지혜의 꽃과 과실이 스스로 익어 사람 중의 스승’이라는 찬사를 받아 불법의 사장(師匠)이라 불렸다.

1065년(문종 19) 5월 14일에 문종의 넷째 아들인 왕후(王煦)[대각국사 의천]를 출가시켜 화엄교관(華嚴敎觀)을 가르쳤다. 경덕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의천은 강의를 대신 맡게 되었고, 스승의 제문을 지으면서 ‘법장(法匠)’이라고 표현하였다. 제자로는 의천을 비롯하여 원경왕사 낙진(樂眞), 승통 창원(昶元)·칭도(稱道)·이기(理琦) 등이 있었다.

1066년(문종 20) 10월 8일에 입적하니, 나이는 68세이고, 승랍은 57세였다. 입적 당시 사람들이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신 것과 같다.”라고 말하였다. 왕이 명을 내려 장례일을 돌보게 했으며 개성 오룡산 남쪽 언덕에 임시로 안치했다가 1072년(문종 26) 10월에 탑비를 구룡산(九龍山) 복흥사(福興寺) 서북쪽에 세우고 유해를 이장하였다.

[묘소]

본래 개경 부근의 구룡산 복흥사에 경덕국사의 부도탑과 비가 있었다고 한다. 부도탑에서 나온 묘지(墓誌)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입적 후 문종이 시호로 경덕(景德)을 내리고 국사(國師)로 추존하였다. 의천경덕국사의 제문을 2편이나 지었으나 현재 결락되어 일부만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에 전하고 있다. 내용을 대략적으로 보면,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당시의 습속이 천박해지고 스승과 제자의 의리가 얇아지고 있는 세태를 한탄하면서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또 경덕국사에 대해 “구룡산은 산 중에 빼어나고, 경덕국사는 스승 중의 으뜸이라. 저 사찰에서 이미 성불의 진리를 깨우쳤으니 이 영혼의 터전에서 또 평안히 하리라.”라고 추모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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