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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653
한자 李福休
영어음역 Yi Bokhyu
이칭/별칭 이조휴(李祖休),이심휴(李心休),사엄(士儼),담촌(澹村),한남옹(漢南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명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성별
생년 1729년연표보기
몰년 1800년연표보기
본관 여주
대표관직 첨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여주(驪州). 초명은 이조휴(李祖休)·이심휴(李心休), 자는 사엄(士儼), 호는 담촌(澹村)·한남옹(漢南翁)·평천옹(坪川翁). 아버지는 이속(李涑)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활동사항]

이복휴(李福休)[1729~1800]는 1752년(영조 28) 진사가 되고, 1762년(영조 38)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가 되었으며, 이듬해 별검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지은 『승은록(承恩錄)』에 따르면 “영조 46년 종묘를 알현한 임금이 그를 대면한 후 특별히 6품직으로 올려주라고 하였으나, 도승지 윤득우(尹得雨)가 이 사람은 재능이 있어 기주관으로 뺄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재능과 성실성이 오히려 출세에 장애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73년(영조 49) 강령현감에 재임 중 해이해진 아전들의 기강을 세우고, 나태한 백성들에게는 잡기(雜技)·낭비·부채를 일소하도록 독려하였다. 또한 보리농사와 통구(通溝) 설비를 장려하고, 어염의 생산을 배가시키는 데 힘썼다. 한편 고을 사람들과 논의하여 사육신의 한 사람인 유응부(兪應孚)의 사당을 중수하고 기문을 지었으며, 임금이 해주 동정에 이성계의 전승 기념비각을 세울 때 황해감사 이택진(李宅鎭)의 부탁으로 해주동정비각기(海州東亭碑閣記)를 지었다.

1779년(정조 4) 금천군수로 부임한 뒤 관내에 창고를 설치하여 세곡 운반과 관리를 쉽게 하였고, 퇴락한 향교의 대성전을 보수하였다. 이후 10여 년간 관직에서 물러나 산천을 유람하며 지내다가 1790년(정조 14) 별좌에 임명된 후 사헌부감찰·병조전랑·예조정랑·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 『담촌집(澹村集)』은 1,000여 편의 근체시와 300여 편의 악부시, 수백 편의 산문을 모은 것으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위한 경전·예설·역사·경제·천문·지리·기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또한 상고시대부터 17세기까지의 우리 역사에서 고대의 건국 시조 및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249수의 시로 읊은 『해동악부(海東樂府)』를 완성하였다.

이는 이복휴가 금천군수를 마치고 안산에 머물면서 10여 년 동안 준비하여 1787년에 1차 완성하고‚ 이후 1~2년간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은 시대 순으로 배열하였고‚ 각 편은 시제(詩題)·사화(史話)·원시(原詩)·사평(史評)의 순서로 구성하였다. 『해동악부』는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악부시 가운데 최고의 장편으로 이복휴의 역사의식과 작품 세계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묘소]

묘소는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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