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469
한자 申點先生墓
영어의미역 Grave of Sin Jeom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산 9-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대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신도비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
관련인물 신점
높이 500×180×740㎝[봉분]|158×74×26㎝[신도비]
소재지 주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산 9-2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안산시 향토유적 제5호
문화재 지정일 1991년 11월 2일연표보기

[정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신점의 묘와 신도비.

[개설]

신점[1530~?]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다. 자는 성여(聖與), 호는 척재(惕齋),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할아버지는 신원(申湲)이고, 아버지는 신정미(申廷美), 어머니는 학성군(鶴城君) 이련(李連)의 딸이다. 큰아버지 신순미(申順美)에게 입양되었다. 1564년(명종 19)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경연관(經筵官)으로 입시하여 기묘사화 때에 화를 입은 인물들의 신원(伸寃)에 노력하였다.

1578년 집의가 되어 야인의 침입에 대비한 국방 강화를 건의하는 등 대간으로서 많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뒤 의주목사·강원감사를 거쳐 1592년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연경(燕京)에 체류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명군 출병에 큰 공을 세웠으며, 곧 귀환하여 도총관·동지의금부사 등의 요직을 역임하면서 전란의 타개에 진력하였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녹훈되고, 평성부원군(平星府院君)에 봉해졌다.

[내용]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한전변전소와 능길 사이 산9-2번지에 있다. 신점 선생 묘는 1988년에 신도비를 다시 세웠으며, 묘와 상석, 향로석, 망주석 1기, 문인석 2기가 있다. 삼주(三洲) 이재(李縡)가 글을 짓고, 신동훈(申東薰)이 글씨를 쓰고, 신차훈(申車薰)이 전액을 지었다. 이재가 찬한 비문을 그대로 새겨 새로 세웠다. 신점 선생 묘는 1991년 11월 2일 안산시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 신도비는 신점과 그의 가족 관계, 임진왜란 당시 명과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비문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