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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455
한자 姜澂先生墓-神道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and Grave of Gang Ji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 산 16-3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신대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신도비
건립시기/일시 1536년[묘]연표보기|1647년[신도비]연표보기
관련인물 강징
높이 160㎝[묘]|136㎝[신도비]
지름 600㎝[묘]|75㎝[신도비의 너비]
소재지 주소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 산 16-3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안산시 향토유적 제3호
문화재 지정일 1991년 11월 2일연표보기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인 강징의 묘와 신도비.

[개설]

강징[1466~1536]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자는 언심(彦深), 호는 소재(少齋)·심재(深齋)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 강이행(姜利行)의 아들이다. 글씨를 잘 써서 중종의 총애를 받았는데 중종은 그를 시켜 옛 명현들의 명언과 시문(詩文)을 쓰게 하여 홍문관에 걸어놓고 선비들과 백관(百官)들이 처신의 거울로 삼도록 했다. 필법이 당대 으뜸이었다 한다. 그의 글씨로 ‘정익혜공난종신도비명(鄭翼惠公蘭宗神道碑銘)’, ‘예조참의최한정비(禮曹參議崔漢禎碑)’가 있다.

[내용]

강징의 묘와 신도비는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 산16-3 윗버대 늘소목장 건너편 언덕에 있다. 묘는 1536년(중종 31), 신도비는 그 후 111년이 지난 1647년(인조 25) 건립되었다. 강징의 묘는 원형의 봉분 앞에 석물로 상석, 장명등, 망주석 2기, 문인석 2기가 있으며 장명등은 사각형으로 옥개는 4면에 합각을 두고 있다. 묘의 크기는 높이 160㎝, 높이 600㎝이고, 신도비는 비신 높이 136㎝, 너비 75㎝, 두께 20㎝이다. 비좌는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강징의 신도비 상단에 ‘예조참판강공신도비명(禮曹參判姜公神道碑銘)’이라고 새겨져 있다. 정사룡이 찬하고 조상우가 글을 썼으며 윤덕준이 전액했다. 강징의 묘와 신도비는 1991년 11월 2일 안산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었다. 강징 신도비의 본문과 번역문이 『시흥금석총람(始興金石總覽)』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