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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440
영어음역 Goindol
영어의미역 Dolmen
이칭/별칭 지석묘(支石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신대광

[정의]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선사시대 돌무덤.

[개설]

고인돌은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한다. 고인돌에 대한 분류는 학자들의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형태상 크게 3가지 형식, 즉 북방식·남방식·개석식으로 나뉜다. 북방식 고인돌은 4개의 판석을 세워서 평면이 장방형인 돌방을 구성하고, 그 위에 거대하고 편평한 돌을 뚜껑돌로 올려놓은 것이다. 유해가 매장되는 돌방을 지상에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바둑판식’으로도 불리는 것으로, 판석·할석·냇돌 등으로 지하에 돌방을 만들고 뚜껑돌과 돌방 사이에 3~4매 또는 그 이상의 받침돌이 있는 형식이다. 주로 전라도·경상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 전기[초기 철기시대: BC 300~BC 1년] 초에 걸쳐 유행한 거석분묘이다.

개석식 고인돌은 뚜껑돌과 지하 돌방 사이에 받침돌이 없이 뚜껑돌이 직접 돌방을 덮고 있는 형식이다. ‘무지석식 고인돌’·‘변형 고인돌’이라고도 불리는데 일부 학자들은 남방식 고인돌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 중 강화[사적 제137호], 고창[사적 제391호]과 화순[사적 제410호] 고인돌은 2000년 12월 2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거의 전 국토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이제까지 보고되지 않은 함경북도 지방뿐만 아니라 강화도[하점면 부근리 지석묘, 사적 제137호] 같은 해안 도서나 또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와 흑산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서해 및 남해의 연해 지역과 큰 하천 유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특히 전라도·황해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다. 그러나 동해 지방으로 가면 분포가 희박해지며 산악지대에서 가끔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의 위치는 서해로 흘러가는 강줄기 근처로, 결국 고인돌은 서해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인돌 제작 방법은 우선 큰 돌을 떼어내어 사용했는데, 돌을 떼어내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바위틈이나 인공적인 구멍에 나무쐐기를 박아서 물을 부어 불려 떼어내는 방법이 이용되었을 것이다. 운반은 지렛대와 밧줄을 이용하거나 수로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돌은 받침돌을 세우고 그것과 같은 높이의 봉토를 쌓아 경사면을 이용해 끌어올린 다음 봉토를 제거했을 것이다.

고인돌에는 부장품(副葬品)[껴묻거리]이 함께 나온다. 그러나 고인돌의 규모와 수에 비해 껴묻거리가 나온 것은 비교적 적다. 그나마 출토된 유물의 수와 종류도 매우 한정되어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껴묻거리에는 주로 화살촉과 돌검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밖에 돌도끼·가락바퀴 등의 석기와 민무늬토기계통의 토기류, 옥으로 된 장식품과 소수의 청동기 등이 있다.

[분포 지역]

안산 지역에서도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유물인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이 고인돌들은 대부분이 남방식으로 월피동·양상리·선부동 등지에서 발견되는데, 지하에 토광을 파서 시체를 묻거나 간혹 돌을 깔았던 흔적이 있었다. 한강변에서의 고인돌은 남방식과 북방식이 혼재하고 있는데, 매장 시설이 지상부에 올라와 있는 북방식은 강화도에서 춘천을 잇는 선을 그 남방 한계선으로 하고 있으며, 간혹 그 이남에서도 발견되기도 한다.

안산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의 분포 지역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선부동[시흥시 군자동 포함]에 11기, 월피동에 2기, 양상동에 3기가 있다. 좀 더 지역을 확대하면 시흥시 조남동에 1기, 광명시 가학동에 10여기의 고인돌이 있다. 안산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 많은 고인돌이 발견되는 것은 많은 부족들이 지역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살았다는 증거이다. 일반적으로 고인돌이 발견된 지역을 살펴보면 강과 하천을 낀 낮은 구릉지대이며, 주변의 자연 환경과 지세에 알맞은 골짜기 방향이나 강과 하천의 흐름을 따라서 있는데, 안산의 고인돌 분포 지역도 대체로 그러하다.

[선부동 고인돌]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은 안산시 선부동에서 총 11기가 발견되었다. 선부동 고인돌은 규모나 형태면에서 서로 다른 집단이 공존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다양한 유물들도 출토되었다. 1991년 1월 5일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시화지구 정수장 건설지에 대한 지표조사를 경기도에 의뢰하여, 같은 해 2월 25일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을 발견하였다. 그 해 4월 23일부터 5월 30일까지 시흥시 관내(가)지구에서 4기, 안산시 관내(나)지구에서 7기 등 총 11기를 발굴하였다.

석기류로는 마제석검·반달돌칼·숫돌 등이 출토되었으며, 토기류로는 민무늬토기계, 붉은 간토기계, 즐문토기계 등이 출토되었다. 발굴된 고인돌 중 1기는 경기도립 박물관에 이전 복원하였으며, 7기는 안산시 상록구 이동에 있는 성호기념관 앞에 전시하였다. 현재 선부동에는 3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데 그 중 1기는 도로변 식당 뒤편에 있는데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성혈 2개가 있다.

[양상동 고인돌]

안산 지역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는 고인돌 중 양상동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로 추정하고 있다. 반월산업단지 문화재발굴의 일환으로 1978년 9월 4일부터 9월 15일까지 건국대학교박물관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모두 10기의 고인돌을 확인하였다. 고인돌의 하부구조는 장방형의 토광으로 일반적인 지속묘의 하부구조인 석실구조와 비교되는 매우 특징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1호 지석표의 상석이 이중상석이라는 점이 특이하며, 하부구조인 토광에 시신을 안치하고 흙을 덮은 뒤 약 370㎝ 범위로 10㎝ 정도의 자갈을 깔아놓았다. 또한 무문토기편 일부가 발견되었다. 아쉽게도 현재 고인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월피동 고인돌]

1978년 경희대학교박물관팀에 의해 2기를 확인하였으며 1983년에 한양대학교박물관팀에 의해 4기가 확인되었다. 1978년 경희대학교 조사에 의하면 고인돌의 하부구조는 지석 없이 토광을 묘실로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양식은 이 지역 지석묘 양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호 고인돌의 상석에는 39개의 성혈이 있다고 보고되었다. 무문토기 파편 일부와 1978년 조사 시 석기 2점이 출토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출토유물의 빈약함으로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서해안 고인돌 사회의 이해를 위한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과 경지 정리로 인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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