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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방조제 건설로 육지가 되긴 했지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E010301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종현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진호

시화방조제 건설 전 대부도의 가장 특징적인 해안 지형은 갯벌로, 북쪽은 군자만 일대로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고, 남쪽에도 화성군[현 화성시]  제부도에 이르는 지역에 갯벌이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화방조제 건설로 대부도 북동부의 갯벌은 모두 육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인구에 비해 국토 면적이 매우 협소하고 국토의 2/3 이상이 산지와 호수 등으로 형성되어 있어 실제 사용 가능한 국토 면적은 약 26% 정도이다. 이러한 국토 현황과 3면이 바다인 지형적 특성을 감안하고 식량 확보가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어졌던 1970년대 상황을 생각하면 당시 해안 매립을 통해 국토를 확장하는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를 지나며 해마다 농업용지는 줄어들고, 반면에 공업 규모의 확대에 따른 공업 용지의 수요는 늘어나게 되었다. 늘어나는 공업 용지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1970년대 후반부터 해안 매립 비용이 저렴하고 수도권과 가까운 서남해안 개발이 추진됐으며, 시화호 개발에 대한 타당성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시화지구의 매립 계획이 세워졌다.

시화지구를 선정한 이유는 수도권에 위치하여 공업 용지 수요에 적당하고, 반월 및 인천 남동공단에 인접하여 사회간접자본의 추가 부담이 적게 들어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1975년부터 농업진흥공사[현 농어촌공사]가 조사한 서·남해안 간척계획에 포함되어 1977년 6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반월[안산] 신도시 건설현장을 돌아보며 인접 해안의 매립을 거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1980년대 해외로 진출했던 건설업체들이 국제 경기의 침체로 국내로 철수하는 등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고용 확대 등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시화호 개발사업이 계획되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화호 개발사업은 공업단지 조성과 농업용지 개발 및 도시용지를 조성하는 대단위 복합용도의 해면매립사업으로서, 1단계로 1998년까지 총 사업비 1조 8,990억 원을 투자하여 24.52㎢의 단지를 조성하고, 총 길이 12.6㎞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방조제를 건설하여 안산시 대부도 일원을 육지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도권의 이전 공장 수용을 위한 공단을 조성하고[시화공단], 방조제 축조로 국토를 확장하여 도시개발과 농지조성을 추진하고, 시화호의 물로 대규모 간척지와 인근 공단에 농업·공업용수를 공급하고, 해외건설 합리화 방안에 의해 철수하는 건설업체[현대건설 등]를 지원하고, 수도권의 인구 및 산업 분산을 위한 자족도시로서의 안산 신도시 건설과의 연계를 목적으로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군 일원에 정부가 시행하는 서해안 개발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사업이라 설명할 수 있다.

[한국 최대 환경 참사-시화호 개발]

시흥과 화성의 첫 글자를 땄다는 시화호 간척사업이 시작된 것은 1987년 4월이다.

바다를 막아 땅을 만들어서 첨단농업단지와 휴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장밋빛 환상은 그러나 비극의 서막이었다. 오이도에서 경기도 제2의 섬인 대부도까지 장장 12.7㎞를 방조제로 막아서 얻은 것은 ‘죽음의 호수’뿐이었다.

1994년 1월 끝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되자마자 여의도 면적의 80배에 이르는 호수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방조제 완공 전인 1989년 화학적 산소요구량[COD] 기준으로 1.8㏙이던 호소(湖沼) 수질은 1994년 5.7㏙, 1995년 11.1㏙, 1996년 20.3㏙으로 치솟았다.

시화호는 ‘죽음의 호수’로 불리며 한국 최대의 환경 참사로 꼽혔다.

시화호의 수질오염이 사회 문제가 되자 1996년 7월 정부는 시화호로 흘러 들어오는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를 처리할 수 있는 하수처리장을 확충하고 오폐수 차집관로를 설치하여 해수를 유통시키는 등 총 사업비 4천493억 원 규모의 시화호 수질개선종합대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매일 배수갑문을 열어 해수 유통을 하는 덕분에 시화호의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은 2003년 2.6㏙까지 개선됐으나, 이로 인해 대부도 등 주변 바다와 갯벌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낳기에 이른다.

정부가 담수화를 사실상 포기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4년 후인 1998년 11월이었으며, 공식 선언은 2001년 2월에 있었다.

이때까지 장장 14년 동안 1조 이상의 혈세가 낭비되었다. 그 후 현재까지 시화호는 개발지상주의 정책이 자연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며, 깨끗한 환경으로 되살아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보제공]

  • •  홍성웅(남, 1941년생, 대부북동 거주, 전 대부면 부면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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