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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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海炳 |
영어공식명칭 | Yun Haeb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남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윤해병(尹海炳)[1906~1967]은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 송정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태어났다. 송정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송정중학원에 입학하였으나, 병약하여 중도 퇴학하였다.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인 이경채(李景采)와 박병하(朴邴夏)의 항일 활동을 적극 지원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이경채는 1928년 4월 11일 밤 '조선독립선언문'이라는 제목의 격문을 어둠을 틈타 전라남도 광주 곳곳에 붙였다. 광주역 앞 경찰파출소 게시판, 광주고등보통학교 앞 전신주, 광주읍에서 눈에 띄는 6개소의 전신주 및 판자벽, 송정리역 앞 전신주, 송정신사(松汀神社) 내 게시판, 송정리읍에서 눈에 띄는 장소 등이다.
박병하는 1928년 4월 14일부터 4월 17일까지 '건전한 사상을 가진 학생 여러분에게 고함'과 '자본주의적 계급적 고등 충복(忠僕) 여러분에게 고함'이란 제목의 유인물을 각 중등학교와 경찰서에 우송으로 반포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윤해병은 1928년 4월 18일 박병하의 부탁을 받고 이경채의 집에서 인쇄에 사용하였던 등사판과 인쇄물 20여 통을 받아 집으로 가져와 인쇄물을 불태우고 등사판을 파기하였다. 또한, 1928년 4월 18일 밤 박병하의 집에 있던 등사판 부속품과 원지(原紙) 등을 박병하의 집으로부터 남쪽으로 4㎞ 떨어진 들판 도랑에 던져 버리는 등 이경채와 박병하의 항일투쟁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항일투쟁 활동 지원으로 인해 일본 경찰에 붙잡혀 7개월여의 옥고를 치렀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200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