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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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采熙 |
영어공식명칭 | Bak Chaehu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남 |
출생 시기/일시 | 1913년 - 박채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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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9년 5월 - 박채희 소녀회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11월 3일 - 박채희 광주학생운동 참여 및 광주역 앞에서 부상당한 학생들을 치료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10월 6일 - 박채희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47년 - 박채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3년 - 박채희 건국포장 추서 |
출생지 |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 |
학교|수학지 | 전남여자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158번길 8[장동 39-12]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소녀회 회원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개설]
박채희(朴采熙)[1913~1947]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5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 비밀결사 소녀회(少女會)에 가입하였으며,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가 광주경찰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1928년 11월 초순경 재학생 장매성(張梅性)의 주도로 남협협(南俠俠), 고순례(高順禮), 장경례(張慶禮) 등이 모여서 '여성을 남성의 억압으로부터, 무산대중을 자본계급의 압박으로부터 각각 해방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를 조직할 것에 서로 찬성하고 소녀회를 만들었다. 소녀회는 사업의 일환으로 회원 확보에 노력하는 한편, 매월 1회 월례 연구회를 통하여 사회 모순을 연구하고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박채희는 1929년 5월 장매성의 집에서 있었던 월례 연구회 때 박계남(朴繼男), 박현숙(朴賢淑), 김금연(金錦嬿), 김귀선(金貴先) 등과 함께 참석하여 소녀회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 소년회의 일원으로 광주역 앞에서 붕대와 도포약을 가지고 뛰어와 부상당한 학생들을 치료하였다. 이 일로 박채희는 1929년 11월 말경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1930년 1월 15일 소녀회가 일본 경찰에 노출되어 박채희 등 12명이 광주경찰서에 체포되었고, 1930년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7년 12월 1일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