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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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歸厚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78-72[광산동 519]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효주 |
건립 시기/일시 | 1870년 - 귀후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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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17년 - 귀후재 재건 |
현 소재지 | 귀후재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78-72[광산동 519] |
원소재지 | 귀후재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78-72[광산동 519] |
성격 | 재실|서당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행주기씨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행주기씨 재실 겸 서당.
[개설]
귀후재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행주기씨의 재실이자 서당이다. 행주기씨는 조선 중기까지 경기도에 거주하였으나 기묘사화 때 광주 지역으로 낙향하면서 현재의 광산구에 정착하였다. 귀후재는 고봉 기대승의 6대손인 기언복(奇彦復)[1713~1772]을 제향하는 재실이다. 정내의 현판 글씨를 구한말의 문신이자 명필인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1853~1939]가 쓴 것으로 보아 재건립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위치]
귀후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78-72[광산동 519]에 있다.
[변천]
귀후재는 1870년 재실로 지어졌다. 기동준(奇東準)[1869~1918]이 쓴 『귀후재기(歸厚齋記)』에 1917년에 강학을 위한 서당으로 재건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형태]
귀후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조선 말기 건축물이다. 입구에 솟을삼문이 있다.
[현황]
귀후재는 건물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수가 필요하다. 문화재돌봄관리단이 일상 정도의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귀후재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재실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재건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서당의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행주기씨 문중의 사회적 역할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또한 귀후재의 기록인 『귀후재기』가 남아 있어 변천 및 건립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