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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225
한자 崔鳳燁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 5월 16일연표보기 - 최봉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0월 25일 - 최봉엽 피체
활동 시기/일시 1928년 5월 29일 - 최봉엽 징역 8월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54년 3월 19일연표보기 - 최봉엽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 - 최봉엽 건국 포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27년 - 옥구 농민 항쟁 발발
출생지 최봉엽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거주|이주지 최봉엽 거주지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최봉엽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옛 옥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1927년 11월 25일 전라북도 서수면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사 농장이 소작 농민들에 대하여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자, 장태성김행규 등은 농장의 일본인 지배인 사이토[齊藤信一]에게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지부장 장태성이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저녁 무렵 최봉엽장태성군산 경찰서로 이송되기 위해 서수면 임피 경찰관 주재소에 구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전하였다.

최봉엽은 이 소식을 듣고 조합원 수백 명과 함께 밤 9시경 임피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을 구타하여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또 돌아가는 도중 서수 주재소에 간부 박상호가 체포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 10시경 그곳을 습격하여 박상호를 구출하였다. 그러나 최봉엽은 일본 경찰에 의해 조합원 및 농민 8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최봉엽은 이 사건으로 1928년 2월 29일 전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동년 5월 29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위 구금자 탈취 및 소요 혐의로 징역 8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3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2)
  • 국가 보훈처 공훈 전자 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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