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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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公勳 |
이칭/별칭 | 최재순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최공훈은 1919년 3월 군산 지역의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노춘만과 함께 추진하였고 3.5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켜 시위하다 체포되었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위해 군자금 모집에 종사하였다.
[활동 사항]
최공훈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천도교 전주 교구로 전달된 독립 선언서와 독립 운동의 방법 등에 대한 연락을 동지인 옥구군[현 군산시] 천도교 교인 노춘만(盧春滿)·신현성(申鉉成)·김종수(金鍾洙) 등과 함께 전달받아 3·1독립운동을 계획 추진하였다. 군산·옥구 지구 독립 만세 운동을 노춘만 등과 함께 추진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 행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3월 17일 광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등으로 징역 4월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1921년 3월 하순 전라북도 옥구군 대야면 지경리[현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지경리] 천도교구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을 때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원 신정산(申定山)으로부터 독립 사상의 선전과 군자금 모집 등에 힘써 줄 것을 권유받고 뜻을 함께 하여 1922년 10월까지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