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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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陳壯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서울과 군산에 활동한 전라북도 군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진장권은 1919년 서울 탑골 공원의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고, 옥구[현 군산시]로 돌아와 시위 운동을 준비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 정부 산하 학교에서 교육과 무장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진장권은 1919년 3월 1일 경성 고등 보통학교(京城高等普通學校) 1학년 재학중 서울 탑골 공원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고, 옥구로 귀향하여 채만식(蔡萬植)·김홍렬(金洪烈)·최한풍(崔漢○)·김석종(金錫宗)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태극기 200본을 제작하는 등 시위 운동을 준비하였으나 일본 경찰에게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광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동년 6월 20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형에 집행 유예 2년을 언도받았다. 진장권은 다시 1924년 9월 23일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산하 인성 학교(仁成學校)의 교사로 초빙되어 교민 자녀의 교육과 독립운동에 진력하였고, 1933년 3월에는 중국 군관 학교 간부 훈련단(中國軍官學校幹部訓練團)에 입단하여 무장 투쟁 능력을 기르며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