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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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弘基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의병.
[개설]
정홍기는 1907년 9월부터 1909년 6월까지 유지명(柳志明) 의병진에 가담하여 전주·용담·고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관아 세무서 건물을 방화, 소각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정홍기는 전라북도 옥구[현 전라북도 군산시] 출신으로 유지명(柳志明) 의진에 가담하여 전라북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정홍기는 반일 의병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1907년 9월 유지명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전라북도 고산(高山) 출신의 유지명은 군대 해산 직후인 9월 초순부터 삼남 의병 대장(三南義兵大將) 혹은 창의 대장(倡義大將)이라 칭하고 격문을 통하여 의병 모집에 주력하였고, 총기를 마련하는 한편 의병의 각 부서를 정하였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서 일본군과 접전하는 등 활동이 다대하였다. 정홍기는 1908년 2월까지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총 수십 정, 도검 수십 자루를 휴대하고 유지명 의병장의 지휘에 따라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용담군(龍潭郡)·전주(全州) 등 각지에서 활발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12월 19일 유지명 의병장의 지휘에 따라 고산군 읍내의 세무서 등을 불태웠다. 또한 의병 활동 자금 확보를 위한 비상 수단으로 1909년 6월 20일 전주부(全州府) 소양면(所陽面)에서 군자금품을 거두었다. 아울러 그날 밤 동면 삼중리(三中里)에서 탄환 구입 자금으로 엽전 500문을 거두는 등 주로 군수품과 군자금 모집에 주력하였다. 그러던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1909년 7월 19일 공주 지방 재판소 전주 지부에서 징역 15년을 받고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