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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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正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이정춘은 1927년 11월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현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에서 이엽사 농장의 고율의 소작료와 옥구 농민 조합 서수 지부 간부의 검거에 항의하여 임피 역전 주재소와 서수 주재소를 습격하여 구금자를 탈환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활동 사항]
1927년 11월 25일 서수면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사 농장이 소작 농민들에 대하여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자, 장태성과 김행규 등은 농장의 일본인 지배인 사이토[齊藤信一]에게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지부장 장태성이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저녁 무렵 이진섭은 장태성이 군산 경찰서로 이송되기 위해 서수면 임피 경찰관 주재소에 구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전하였다.
이정춘은 이 소식을 듣고 조합원 수백 명과 함께 밤 9시경 임피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을 구타하여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또 돌아가는 도중 서수 주재소에 간부 박상호가 체포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 10시경 그곳을 습격하여 박상호를 구출하였다. 그러나 이정춘은 일본 경찰에 의해 조합원 및 농민 팔십 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정춘은 1928년 2월 29일 전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에서 소위 구금자 탈취 및 소요 혐의로 징역 6월을 언도 받고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 건국 포장, 200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