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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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熙淳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1919년 3월 6일 군산 독립 만세 시위를 모의하고 독립 선언문을 제작하고 배포하며 시위 운동을 전개했다.
[활동 사항]
유희순은 1919년 3월 5일 김병수·박연세·이두열 등이 주동이 되어 전개한 군산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때의 만세 시위는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갑성으로부터 2백여매의 독립 선언서를 전해 받고, 군산에서 활동하던 세브란스 의학 전문 학교 학생 김병수에 의해서 계획되었다. 1919년 2월 26일 군산에 도착한 김병수는 영명 학교 교사 박연세·이두열·김수영·고석주·김인묵·김윤실·이동욱 등을 만나 독립 선언서를 전해주고, 군산 장날인 3월 6일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으며,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 선언서도 등사하였다.
그러나 만세 시위 전날인 3월 5일, 박연세·이두열·김수영이 오전 수업을 마칠 무렵, 시위 계획을 눈치 챈 군산 경찰서에 강제로 연행되었다. 이에 김윤실이 긴급 회의를 소집하여 즉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고, 군산 시내로 뛰쳐나갔다. 이때 유희순도 5백 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이 때 체포된 유희순은 1919년 6월 12일 고등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1년 6월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