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178 |
---|---|
한자 | 金洙榮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 김수영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김수영 3·1 운동 준비중 피체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0일 - 김수영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2년 6월 언도받고 투옥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수영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김수영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
활동지 | 김수영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 |
성격 | 3·1운동 계열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김수영은 1919년 3월 5일 영명 학교[현 군산 제일 중·고등학교]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위한 독립 선언문 등2,000 여매를 제작하여 각 교회 등에게 배포하고 주민을 규합하여 만세 시위를 준비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김수영은 1919년 당시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현 전라북도 군산시 구암동]에 있는 영명 학교(永明學校)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서울에서 온 청년 학도 김병수(金炳洙)로부터 선언서와 함께 만세 운동에 관한 연락을 받고 독립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김수영은 이두열(李斗悅)·박연세(朴淵世) 등과 협의하여 동지들을 규합하고 거사일을 군산 장날인 3월 6일로 정하였다. 그러나 만세 시위 전날인 3월 5일 만세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와 독립 선언문 이 천 여매를 제작하고 각 교회 등에 배포하며 거사를 준비하던 중 박연세·이두열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수영은 1919년 4월 30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