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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167
한자 高圭永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3년 3월 2일연표보기 - 고규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고규영 일본 경찰에 피체
활동 시기/일시 1934년 3월 19일 - 고규영 치안 유지법 위반 판결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32년 12월 21일연표보기 - 고규영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8년 - 고규영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고규영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고규영 활동지 - 전라북도 전주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 출신 노동 운동 및 농민 운동가.

[개설]

고규영은 1931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조선 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 운동에 참여하였고, 1932년 5월 말 옥구의 일본인 농장인 웅본 농장(雄本農場) 소작인들이 농민 조합을 조직하는데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1930년대 들어 일본의 민족 탄압이 가중되자 대중 운동이 고양되어 갔다. 전라북도에서는 전주 공립 보통 학교와 전주 사립 신흥 학교, 이리 공립 농림 학교 등을 중심으로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였다.

이 시기 사회 운동과 노동 운동을 하고 있던 고규영은 전주 공립 고등 보통 학교를 중퇴한 김병윤(金炳倫)과 함께 1932년 5월 말 옥구의 일본인 농장인 웅본 농장(雄本農場)의 소작인들이 예전부터 소작인들에게 불리한 정조 삽앙(正條揷秧)을 강제당하고 있는데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농민 조합을 조직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웅본 농장은 옥구군 대야면과 정읍군 태인면에 주사무소를 두고 완주·정읍·부안·옥구·김제·익산 등지에 3,148정보의 거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한국 농민들을 수탈하고 있던 대표적 일본인 농장이다.

전라북도 지역에서 비밀 결사 활동을 하던 김창수와 김철수가 검거되면서 전라북도 지역 사회 운동이 부진 상태에 빠지게 되고 더욱이 일본 경찰은 전라북도 지역 운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여 1932년 봄부터 대대적인 검거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전라북도 지역에서 200여 명이 체포되고 그 가운데 4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때 고규영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2년 4월 전라북도 경찰부를 거쳐 1933년 12월 4일 공판에 회부되었고, 1934년 3월 19일 전주 지방 법원에서 제1회 공판이 열려 42명이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판결을 받았다. 고규영은 이때 체포된 전라북도 지역 노동 운동자들과 함께 재판을 받던 중 감옥에서 병에 걸려 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3권(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1)
  • 국가 보훈처 공훈 전자 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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