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139 |
---|---|
한자 | 鄭萬采 |
이칭/별칭 | 매촌(梅村)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조종안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 정만채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5년 - 정만채 야학당 매촌의숙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 정만채 동산 학원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55년 - 정만채 군산 시사회 조직 |
몰년 시기/일시 | 1961년 9월 1일 - 정만채 사망 |
출생지 | 정만채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조촌동 |
활동지 | 정만채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 |
묘소 | 정만채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백석리 |
성격 | 육영 사업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동산학원 설립자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 출신의 육영 사업가.
[개설]
정만채는 동산 학원을 설립하고 군산 시사회를 조직하였다.
[가계]
정만채의 호는 매촌(梅村)이다. 1884년(고종 21) 조촌리[현 전라북도 군산시 조촌동의 옛 이름] 대지주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권유로 다섯 살 때 한학을 수학했으며 성장하면서 농업과 학문에 몰두했다. 청년 시절에는 문학을 즐겼다. 1915년 자택에 야학당 매촌 의숙(梅村義塾)을 설립하고 군산·옥구 지역 청소년들을 모아 학문을 전수하였다.
[활동 사항]
정만채는 일제 강점기이던 1920년부터 군산 지역 문맹자를 대상으로 한글 교육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감시와 간섭은 날로 심해졌고, 1926년에는 탄압을 견디다 못해 문을 내렸으나 대신 춘궁기가 되면 가난한 소작농들에게 식량을 급여하는 등 빈농 구제 사업을 전개하였다.
평생 이념이 교육 보국이었던 정만채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아들 정찬홍의 권유를 받아들여 전라북도 부안과 군산에 보유하고 있던 농지를 모두 처분한 쌀 1천 석을 쾌척, 일본인이 설립한 군산 가정 여학교를 인수하고 1948년 9월 학교 법인 동산 학원(東山學園)을 설립하였다.
1955년 군산 시사회(群山詩社會)를 조직하여, 군산 지역 한시(漢詩) 육성 발전 및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정만채가 남긴 한시(漢詩)를 『매촌한시초』로 출간하였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백석리에 정만채의 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현재 매촌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매촌 의숙 장학 재단이 설립되어 지역 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