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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흥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118
한자 文興周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31년연표보기 - 문흥주 출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95년 - 문흥주 정려 건립
거주|이주지 문흥주 거주지 -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남내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문흥주 정려 -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남내리
성격 효자
성별
본관 남평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효자.

[개설]

문흥주(文興周)는 옥구에 세거한 남평 문씨 시중공파 출신으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홀로된 아버지를 정성껏 봉양하고 병 간호를 해드렸다. 마침내 문흥주의 효행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조선 정부에서 1795년(정조 19)에 정려를 세울 것을 명하였다.

[가계]

문흥주남평 문씨 시조 문다성(文多省)의 37세손이고, 남평 문씨 옥구 입향조 문헌(文獻)의 12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진사시에 합격한 문도남(文道南)이고, 할아버지는 문가징(文可徵)이며, 아버지는 문덕형(文德亨)이다. 외할아버지는 고득삼(高得森)[본관 제주]이다.

[활동 사항]

문흥주는 1731년(영조 7)에 태어났으며, 옥구현에 세거한 남평 문씨 시중공파 출신이다. 옥산면 남내리에 거주하였고, 젊은 시절에 먼저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상을 치르고 장사를 지내는데 예의를 다하였다. 이후 홀로 계신 아버지가 병이 들어 산계(山鷄)를 먹고 싶다고 하자 산계를 잡으려 하였는데, 다음날 집에 산계가 들어와서 약으로 썼더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나서 아버지가 다시 병이 들어 병세가 심하자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를 해 드렸고 항상 아버지의 변을 맛을 보아 병의 차도를 점검하였으며, 자신이 아버지 대신 죽기를 하늘에 기도하는 등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바람이 심하게 불고 눈이 몹시 내리는 날에도 등촉을 꺼지지 않게 하였다. 이러한 효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1795년(정조 19)에 정려를 세울 것을 명하였고, 바로 그해에 정려가 세워졌는데, 지금도 당시에 세워진 정려가 군산시 옥산면 남내리 남내 부락에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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