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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116
한자 杜安復
이칭/별칭 이형(理亨),극헌(極軒)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두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94년연표보기 - 두안복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51년연표보기 - 두안복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69년 - 두안복 정려 건립
묘소|단소 두안복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두안복 정려 -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
성격 효자
성별
본관 두릉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효자.

[개설]

두안복(杜安復)은 군산에 세거한 두릉 두씨 가문 출신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여 효행이 세상에 널리 알져지자, 1869년(고종 6)에 정부에서 정려를 세울 것을 명령하였고, 동몽 교관(童蒙敎官)으로 증직하였다. 당시 세운 정려가 지금도 남아 있다.

[가계]

두안복의 자(字)는 이형(理亨)이며, 호(號)는 극헌(極軒)이다. 두릉 두씨 시조 두경령(杜慶寧)의 23세손이고, 두릉 두씨 옥구 입향조 두승손(杜承孫)의 13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두운제(杜運濟)이고, 할아버지는 두만성(杜萬成)이며, 아버지는 두광현(杜光現)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윤정(金潤鼎)[본관 경주]이고, 장인은 강수인(姜守仁)[본관 진주]이다.

[활동 사항]

두안복은 1794년(정조 18)에 태어났고, 1851년(철종 2)에 사망하였다. 두안복의 나이 8세 때에 이웃에서 밥을 얻어다가 부모를 봉양하였고, 어머니가 병이 깊어지자 걱정이 깊은 나머지 끼니를 굶은 경우가 태반이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심에 자신의 집에 개가 출산을 앞두었는데, 개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상(喪) 중에 있으므로 조심해야 된다고 말하자 개가 유산을 하였다고 한다.

두안복은 출타한 부모를 저녁이 되면 꼭 바위 밑에 앉아서 기다리었는데, 이를 본 동네 사람들이 그 바위를 그가 앉아서 부모를 기다린 바위라고 하여 효자암(孝子巖)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 서쪽 산 기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두안복의 효행이 알려지자 1869년(고종 6)에 정부에서 정려를 세울 것을 명령하였고, 동시에 동몽 교관(童蒙敎官)으로 증직하였다. 당시에 세운 정려가 지금도 옥산면 당북리 원당 마을에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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