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003 |
---|---|
한자 | 高得義 |
이칭/별칭 | 유지(由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두헌 |
출생 시기/일시 | 1789년 - 고득의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840년 - 고득의 진사시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858년 - 고득의 사망 |
출생지 | 고득의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
거주|이주지 | 고득의 거주지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
묘소|단소 | 고득의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 남산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제주 |
[정의]
조선 후기 군산 지역[옛 임피현] 출신의 문인·학자.
[개설]
고득의(高得義)는 12세기 중엽 이래 군산[옛 임피현]에 세거한 제주 고씨 문충공파 사직공파 출신으로 1840년(헌종 6) 식년시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가계]
고득의의 초명(初名)은 유지(由之)이다. 제주 고씨 옥구 입향조 고돈겸(高惇謙)의 22세손이이다. 문충공(文忠公) 고경(高慶)의 18세손이고, 사직공 고인충(高仁忠)의 14세손이다. 고재화(高齊華)의 증손이고, 고처한(高處漢)의 손자이며, 고시겸(高時謙)의 아들이다. 외할아버지는 이양국(李養國)[본관 함량]이고, 장인은 강수제(姜守齊)[본관 진주]이며, 후처의 아버지는 임준(任璿)[본관 풍천]이다. 고득의의 증손 고병성(高炳星)[1859~1920]과 고병성의 처 두릉 두씨는 효행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유림들이 1931년에 이들의 효행을 기록한 효행비를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월하리 상갈 부락에 건립하였다.
[활동 사항]
고득의는 1789년(정조 13)에 태어나 1858년(철종 9)에 사망하였다. 1840년(헌종 6) 식년시 진사시에 3등 2위[합격자 총 100명 중 32등]로 합격하였다. 『숭정 기원 후사 경자식 사마 방목(崇禎紀元後四庚子式司馬榜目)』에 그의 거주지가 임피(臨陂), 전자(前資)는 유학(幼學), 부모는 자시하(慈侍下)[응시 당시 편모 슬하에 있었다.], 아버지는 학생(學生) 시겸(時謙)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고득의(高得義)의 과거 급제 교지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1990년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교지(敎旨) / 유학고득의진사삼등(幼學高得義進士三等) / 제이인입격자(第二人入格者) / 도광이십년삼월일-과거지보(道光二十年三月日-科擧之寶) 방(方) 10㎝ 1개(一個)].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 남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