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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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두헌 |
출생 시기/일시 | 1656년 - 오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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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81년 - 오적 문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710년 - 오적 사망 |
출생지 | 오적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
묘소|단소 | 오적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세장리 류동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함양[장흥] |
대표 관직 | 동궁(東宮) 훈도(訓導)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문관.
[개설]
오적(吳勣)은 군산 지역[옛 옥구현]에 세거한 장흥 오씨 한성 판윤공파 출신으로, 1681년(숙종 7)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창악 찰방, 울진 현감, 문천 군수, 기사관, 동궁 훈도 등을 지냈다.
[가계]
오적은 장흥 오씨 시조이며, 고려 고종 때에 몽골과 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공로로 장흥군에 봉군된 오현필(吳賢弼)의 20세손이고, 함양 오씨 시조 오첨(吳瞻)의 43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통정대부 절충장군을 지냈으며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된 오경상(吳景祥)이고, 할아버지는 오정헌(吳廷憲)이며, 아버지는 통정 대부를 지낸 오백흥(吳伯興)이다. 외할아버지는 진주 강씨이고, 장인은 진사 임노성(林老成)[본관 조양]이고, 후처의 아버지는 민흥수(閔興洙)[본관 여흥]이다.
[활동 사항]
오적은 1656년(효종 7)에 태어나, 1710년(숙종 36)에 사망하였다. 나이 25세 때인 1681년(숙종 7)에 식년시 문과에 응시하여 병과 19등으로 급제하였다.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 문과 응시 당시 그의 거주지는 옥구(沃溝), 전자(前資)는 유학(幼學)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과 급제 이후에 창악 찰방, 울진 현감, 문천 군수, 양산 군수, 통예원 상예원 겸 춘추관 기사관, 동궁 훈도 등을 지냈으며, 증직으로 형조 참판을 수여받았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세장리 류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