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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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平文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옥산면|옥구읍|옥서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 시기/일시 | 15세기 - 문헌, 옥구현에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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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5세기 말 - 문희, 임피현에 입향 |
세거|집성지 | 남내리 -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남내리 |
성씨 시조 | 문다성 |
입향 시조 | 문헌|문희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옥구현]에 세거한 성씨.
[개설]
조선 시대 남평문씨(南平文氏) 중의 한 파가 옥구에 세거하였고, 또 다른 한 파가 임피에 세거하였다.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는 15세기에 옥구현 세장리에 입거한 문헌(文獻)과 그의 후손들이고, 임피에 세거한 남평문씨는 15세기 말이나 16세기 초 무렵에 임피현 월하리 서황동에 입거한 문희(文熙)와 그의 후손들이다. 문헌의 후손들이 문희의 후손들보다 그 수가 훨씬 더 많았는데, 이들은 조선 시대 옥구현의 5대 성씨 중에 하나였다.
[연원]
남평문씨(南平文氏) 시조는 신라 자비왕 15년에 하들에서 전라남도 남평군으로 내려왔다는 문다성(文多省)이다. 문다성의 24세손이 고려 말에 원나라에서 목화 씨를 처음으로 전래한 충성공 문익점이며, 문익점의 넷째 아들이 시중공 문중진(文中晉)이다. 문중진은 성균관 진사, 시랑, 밀직부사, 참지 문하시중 등의 관직을 두루 지냈는데, 그에게는 아들 세 명이 있었다. 큰 아들은 전주 판관을 지낸 문헌(文獻), 둘째 아들은 대사성을 지낸 문유(文猷), 셋째 아들은 병조 참의를 지낸 문영(文榮)이다.
[입향 경위]
시중공 문중진(文中晉)의 큰 아들 전주 판관공 문헌(文獻)이 1435년(세종 17) 경에 경상도 산청군 단성면에서 옥구현 세장동으로 이주하였다. 한편 시중공 문중진(文中晉)의 셋째 아들 문영(文榮)은 1395년(태조 4)에 관직을 버리고 사퇴하고, 고향인 경상도 산청군으로 일시 낙향하였다가 경기도 장단으로 이사한 후 아들 문유의(文有義), 손자 문현(文顯)까지 3대에 걸쳐 장단에서 거주하였다. 이후 증손자[문현의 아들] 문희(文熙)가 지금의 군산시 임피면 월하리 서황동에 이사하여 거주하였다. 곧, 군산에 세거한 남평문씨 중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는 시중공 문중진의 큰 아들 문헌의 후손들이고, 임피에 세거한 남평문씨는 시중공 문중진의 증손 문희의 후손들이다.
[현황]
문헌(文獻)이 옥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번창하여, 회현면 원우리, 세장리, 고사리, 옥산면 남내리, 옥산리, 쌍봉리, 당북리, 옥구읍 어은리, 옥서면 선연리 등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는 제주 고씨, 두릉 두씨, 담양 전씨, 진주 강씨 등과 함께 옥구의 5대 성씨를 이루고 있다. 한편 문희(文熙)가 임피현에 입거한 이후 문희의 후손들은 임피 일대에 세거하여 왔다. 후손들의 수는 문헌의 후손들이 문희의 후손들보다 훨씬 더 많다.
현재 군산 지역에 거주하는 남평문씨의 현황은 조사된 사례가 없어 파악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