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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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 시기/일시 | 15세기 중엽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로 이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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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김생수 입향지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 |
세거|집성지 | 경주김씨 세거지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 |
묘소|세장지 | 경주김씨 세장지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 |
성씨 시조 | 김알지(金閼智) |
입향 시조 | 김생수(金生水)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옥구현]에 세거한 성씨.
[개설]
김생수(金生水)가 15세기 중엽에 옥구에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회현면 학당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후손들은 김생수가 호조 참의를 지냈다고 하여 자신들을 경주김씨 참의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연원]
경주김씨 시조는 김알지이고, 김알지의 28세손이 경순왕 김부(金溥)이다. 경순왕의 17세손[김알지의 44세손]이며, 호조 참의를 지낸 김생수(金生水)가 옥구현 회현면 학당리에 입거하였다.
[입향 경위]
김생수(金生水)가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에 입거하면서부터 김생수를 소몽조[현조]로 하는 경주김씨 호조 참의공파가 옥구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김생수가 옥구에 입거한 시기는 아들 김영보(金永輔)[1417~1476]의 생졸 연도로 보아, 15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현황]
김생수(金生水)는 옥구에 입거한 이후 서당 곧, 학당을 개설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김생수가 거주한 지역을 학당리라고 하였다. 현재 학당리 풍촌 마을 입구에 경주김씨 참의공파의 제각이 있으며, 제각 뒤 학당산에는 경주 김씨 참의공파 선조들의 묘들이 있다.
김생수의 후손들 중에서 무과 급제자가 여러 명 배출되었다. 1990년에 간행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무과 급제 교지가 실려 있는 사람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한 김완(金浣)과,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김확(金鑊)[김완의 손자]이다. 2004년에 발간된 『경주김씨 호조참의공 파보(慶州金氏戶曹參議公派譜)』에 김석동(金石仝)[앞의 김영보의 아들, 김완의 고조]이 1444년(세조 26) 친시 무과에, 김발(金潑)[앞의 김석동의 아들, 김완의 증조]이 1492년(성종 23) 무과에, 김윤(金潤)[앞의 김석동의 6세손]이 1611년(광해군 3) 무과에, 김여생(金麗生)[앞의 김윤의 아들]이 1628년(인조 6) 무과에, 김이서(金履緖)[앞의 김완의 아들]가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각각 급제한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한편 경주김씨 호조참의공파에서 해방 이후에 사법 고시 합격자가 현재까지 8명이나 배출되자, 근년에 군산시에서 마을 입구에 ‘장원 마을’이라는 안내석을 세웠다. 2005년 봄에 후손들이 서당산 위에 터를 닦아 입향조 김생수의 단을 설치하고, 김생수의 아들 김영보의 묘를 옥산면 세동리에서 이장하여 비와 상석을 세우고 묘역을 정리하였다.
군산 지역에 거주하는 경주김씨 인구 현황은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